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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결의 페스티벌(54) - 제51회 옥포대첩 기념제전

경남 거제시(시장 권민호)는 성웅 충무공 이순신의 옥포대첩승전 421주년을 기념 하는 ‘제51회 옥포대첩기념제전’ 축제를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옥포대첩기념공원 및 옥포동 일원에서 개최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첫 승첩을 거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24만 시민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드높이고 시민화합을 통한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이번 행사는 의식행사 등 5개 분야 26개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거제시가 주최하고 옥포대첩기념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옥포대첩기념제전 행사 첫날인 14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옥포대첩기념공원에서 경남 초 중 고등학생이 참여하는 백일장과 사생대회, 휘호대회, 연날리기 대회가 열린다. 또 저녁 7시부터 옥포중앙공원에서는 KNN 쇼 유랑극단 시민노래자랑과 불꽃놀이 가 초여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예정이다.


행사 둘째날인 15일은 오전 11시 옥포대첩기념공원 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12시부터는 유진박 공연, 우금치공연, 하나연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오후 1시부터는 투호대회, 석전대회, 윷놀이 대회가 거행된다.


그리고 이날 오후 4시에는 시민,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의 백미인 승전행차 가장행렬이 진목초등학교를 출발해 옥포중앙사거리와 옥포시내 일원으로 진행된다. 이 행렬에는 조선 수군과 거북선, 취타대 연주, 옥포 해전 씬, 강강술래 등을 재현한다.


셋째 날인 16일은 제례봉행을 끝으로 3일간의 모든 행사가 막을 내리게 된다.


옥포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1592년 5월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옥포 앞바다에서 왜선 26척을 격침시킨 임진왜란 첫 승전이다.


옥포대첩기념제전은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매년 6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옥포대첩 승전을 기념하여 열리는 거제시의 대표적 문화행사이다.


옥포대첩기념제전은 1963년 6월 27일, 경남 거제시 장승포읍 아주리에 옥포정이 낙성된 날을 기념하여 제1회 옥포대첩 기념제전을 연 것이 그 효시이다. 이후 1990년 파랑포 해변에 옥포대첩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6년 이상의 공사 끝에 1996년 6월 22일 기념관과 옥포루, 기념탑, 참배단, 사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날 낙성식과 더불어 제34회 옥포대첩기념제전을 매우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1997년까지는 이 기념제전을 음력 5월 7일에 개최하였으나, 행사일이 농번기와 겹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렵고 절기상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1998년부터는 옥포대첩일인 음력 5월 7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6월 16일에 옥포대첩기념제전을 열게 되었다.


당시 이순신을 위시한 우리 수군이 옥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장비나 실전 경험의 우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조정은 왜구에 대한 방비를 전혀 세우지 못한 채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러웠으며 무기 또한 왜구의 조총에 대적할 만한 것이 조선에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수군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나라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애국애족의 충무정신으로 일치단결하여 전투에 임하였던 것이다. 특히 옥포대첩은 왜군의 통신 및 보급로를 차단해 왜군의 육상전진을 저지했으며, 아군의 사기진작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국내사정이 어려울 때면 언제나 정치적 해소책으로 가까운 이웃 대한민국을 침략하였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현재도 호시탐탐 침략의 마수를 준비하고 있다. 독도에 대한 미련이나 동해를 일본해라고 우기는 것이나 헌법을 고쳐 침략자로 다시 나서려는 것이나 다 국내 여론몰이를 통하여 주변국을 위협하려는 전조로 보아야하며 이를 견제하기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592년 당시 일본은 100여년의 내전을 종식하고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관백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통일 후 다이묘(1만 석 이상의 독립된 영지를 소유한 영주)들 에게 나누어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이불만을 국외로 표출하기위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전쟁을 직감한 율곡 이이가 선조왕 에게 10만 대군을 양성 할 것 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어 당파싸움만 일삼던 조정에서 서인은 군대양성에 찬성했지만 동인은 반대하였다. 전쟁 전 선조는 일본에 수신사 3명을 파견하였는데 동인소속 김성일이 전쟁이 일어날 일 은 결코 없다고 주장하여 선조는 군사력을 증강하기보다는 민생을 돌보는 편이 났다고 생각하여 김성일 의견을 받아들여 방비를 하지 않은 것 이다.


만약 10만양병설이 받아들여졌다면 초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조선인구 1/3 이 희생되는 불상사를 최소화 하거나 효과적으로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조정의 안일한 태도에도 문제가있지만 개개인이 나라를 지키려는 구국의 일념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은 없다. 재삼 강조하지만 북한의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효과적인 토론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론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념싸움이나 당리당욕 만 내세우는 싸움은 이젠 그만 두어야한다. 


전쟁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미 진행되는 것이다. 무기를 들기 이전의 전쟁은 살상을 막을 수 있는 기회이다. 방심하면 우리의 희생이 너무 크기에 옥포대첩 같은 기념식을 통하여 나라의 소중함과 역사관을 배울수 있게 함으로, 이러한 축제가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애국 함양에 큰 도움이 되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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