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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결의 페스티벌(59) - 정전기념일 7월27일

대한민국이라는 존재자체가 없어졌을 수 도 있는 큰 사건,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일도 잊어선 않되겠지만 파괴와 살생이 멈춰진 1953년 7월27일 정전기념일 도 잊어선 안될것 이다. 정전협정으로 전쟁은 중단 되었지만 북한은 아직도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수없는 기만술책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어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국 소련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어,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한반도에서의 지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공산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타협될 수 없었기에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다. 따라서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회 마저 결렬되어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실시' 를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유엔 감시하의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에는 36년간의 일본식민생활을 청산하고 남한만의 이승만 대통령의 자주독립국가로 새 출발을 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이 세계만방에 선포되었다.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정부만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결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서 대한민국의 법통을 확인하였다.

한편 소련군의 비호 아래 북한지역을 장악한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은 1948년 9월 9일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하여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승인을 얻어냈다. 

김일성은 소련 및 중공의 대폭적인 지원하에 무기를 들여오고, 남한 내에서 각종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적화통일을 위해 광분하였다. 북한 전역은 1949년 초부터 전시체제에 들어가 각도에 민청훈련소를 설치하여 청장년을 훈련시키는 한편, 고급중학 이상의 모든 학교에 배속장교를 두어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1949년 2월 말에는 적진돌입 및 적 배후 침투를 위한 보전포합동훈련을 실시하였으며, 1950년 초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남한 전역의 지형을 연구, 훈련을 계속하였다.

북한의 남침준비가 완료되자 소련 군사고문단은 1950년 6월 개전에 임박하여 북한에서 철수함으로써 남침기도를 은폐하였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된 북한 김일성의 남침전쟁 이었기에 시흘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7월20일에는 대전이 함락되었다. 8월18일에는 정부가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낙동강을 사이에 둔 남한의 북쪽지역은 이미 김일성의 군화에 점령 되었으며, 낙동강 물이 빨갛게 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마지막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유엔군 의 참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적화 함락되어 아마 공산주의 핍박아래 일제 식민생활보다 더 혹독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 이다.  

유엔군의 병력 참전국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타이, 그리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16개국 이었다.

그리고 덴마크에서 병원선 1척, 인도에서 야전이동병원부대, 이탈리아에서 적십자 병원부대, 노르웨이에서 이동외과병원부대, 스웨덴에서 야전병원부대, 등의 의료를 지원하였으며, 아르헨티나,볼리비아,브라질,칠레,코스타리카,쿠바,에쿠아도르,엘살바도르,아이슬랜드,이스라엘,레바논,라이베리아,멕시코,니카라구아,파키스탄,파나마,파라과이,페루,베네수엘라 등 의 나라가 한국전쟁에 물자 지원국으로 나섰다.

이처럼 생면부지의 나라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참전국의 용사들의 행위에 우린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나? 우리는 철저하게 그들의 갑진 목숨 값 에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다. 

그냥 그날을 기념하는 기념식만으로는 절대 안됀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괄목할만한 도약을 하며 세계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나라가 아닌가? 

아직 생존하여있는 그들은 그날을 기리는 기념식을 그들 나라에서도 행하고 있다. 더 늦기전에 실질적인 보상을 해줌으로 우리를 위해 싸워준 그들에게 늦게나마 은혜를 갚아야한다. 만약 돌아가셨다면 그들 가족 아니면 그들 나라에 어려움이 뭔지 살피어 대한민국은 도움을 받으면 꼭 은혜를 값는 나라로 전 세계국가에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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