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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문 칼럼] 약사가 호객행위를 시켰다면?(2) - 무죄의 주장

이로문 법학박사·법률행정공감행정사

약사가 안내도우미를 고용해 호객행위를 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원심으로 되돌려 보냈다(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0도18062 판결).

 

원심은 왜 무죄를 선고했을까?

 

원심의 판례를 살펴보자(서울동부지방법원 2020. 11. 27. 선고 2020노37 판결).

 

피고인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안내도우미를 공동으로 고용하여 방문할 약국을 지정하지 않은 환자들을 상대로 정해진 순번에 따라 피고인들의 약국으로 안내하게 하였고 이에 따라 환자들이 피고인들의 약국을 이용하게 되었으므로, 피고인들의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불특정 다수인 환자들의 자유로운 약국 선택권이 침해되었고 이에 관하여 피고인들이 공모하였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국 개설자로 하여금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취지에 비추어 기초사실과 이 사건 공판절차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당시 피고인들에게 이러한 공동도우미 제도가 호객행위에 해당하고 이로 인하여 불특정 다수인 환자들의 자유로운 약국 선택권을 침해하거나 의약품 판매 질서를 어지럽게 한다는 인식이 있었음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병원 동관 후문에서 문전약국 직원들의 호객행위 등으로 민원이 빈발하고 약국 간에 분쟁이 생기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관할 보건소나 서울○○병원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반 약사회 소속 약국 개설자들인 피고인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정노력의 일환으로 공동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즉 피고인들은 약국직원들이 환자들을 직접 접촉하여 약국을 안내하는 상황에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쟁적 호객행위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무질서와 분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환자들과 약국직원들의 직접 접촉을 차단하되, 환자들에 대한 약국 안내를 위해 환자유치에 이해관계가 없는 공동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용역계약에서는 공동도우미들의 호객행위로 비춰지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용역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환자들을 문전약국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공평하게 안내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당시 ○○반 약사회에는 모든 문전약국들이 가입되어 있었는데 ○○반 약사회 소속 약국 개설자들이 모두 공동도우미 제도에 동의하여 참여하였고, ○○반 약사회가 ○○반 약사회 소속이 아닌 약국의 개설자가 공동도우미 제도에 참여하기를 원하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거나, 공동도우미 제도에 참여하지 않은 서울○○병원 근처의 다른 약국들이 공동도우미 제도에 관하여 반대의사를 밝혔다는 사정도 기록상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동도우미 제도는 오히려 피고인들이 서울○○병원 동관 후문에서의 의약품 판매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피고인들이 이 사건 용역계약에서 정한 용역업무의 내용은 공동도우미들이 서울○○병원 동관 후문에 대기하고 있다가 동관 후문으로 나오는 환자들 중 문전약국을 방문하기를 원하면서도 방문할 특정한 문전약국을 지정하지 못한 환자들에 한하여 피고인들이 정한 문전약국 순번대로 문전약국을 안내하는 것이었는바, 피고인들은 문전약국 중 한 곳을 방문하기를 원하는 환자들을 문전약국으로 안내하는 행위는 환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환자를 호객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인식에서 피고인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용역계약에서 공동도우미들의 업무를 위와 같이 정하면서도 호객행위로 비춰지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병원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특성상 고가의 항암제, 마약성분이 들어 있는 진통제 등 동네약국에서 취급하기 어려운 약품들이 많이 처방되므로, 환자들은 동네약국에서 처방약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문전약국을 비롯하여 서울○○병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고 할 것이고, 그들 중 일부는 방문할 약국을 지정하지는 못하였더라도 병원 관계자 등을 통하여 동관 후문에 문전약국의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안내를 받고 문전약국을 이용하려는 의사로 동관 후문으로 나온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방문할 약국을 지정하지 않은 채 동관 후문으로 나오는 환자들은 문전약국 중 한 곳을 방문할 의사가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그들에게 앞서 본 공동도우미 제도를 통해 문전약국을 안내하는 것이 그 환자들의 약국 선택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원심의 위 이유를 살펴보면 대법원이 약사법 위반죄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시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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