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이재명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22대 국회에서 잇따른 발의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GMO(유전자변형생물체) 완전표시제’를 둘러싸고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전성이 검증된 기술에 낙인을 찍는 방식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한다기보다 사회적 혼란과 공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식품안전 분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22대 국회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송옥주·윤준병·남인순·임미애 의원이 GMO 표시제 강화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며 입법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최종 제품에 GMO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원재료에 GMO가 사용된 경우 표시를 의무화한다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 차별화된다.
임미애 의원안(2024년 12월 16일 발의)은 GMO 원재료 사용 여부만으로 표시를 의무화하고, 비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표시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준병 의원안(2월 7일 발의) 역시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의 잔존 여부와 관계없이 표시를 의무화하고, 비의도적 혼입률이 0.9% 이하인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인순 의원안(1월 13일 발의)은 간장, 전분당, 대두유 등 주요 품목을 중심으로 완전표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며, Non-GMO 표시를 허용하는 조항을 포함했다.
송옥주 의원이 4월 21일 발의한 개정안은 제조·가공식품뿐 아니라 외식업체에서 사용하는 식자재까지 GMO 표시를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음식점에서도 GMO 원재료 사용 여부를 고지하도록 했으며,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도 담았다.
송 의원은 “GMO는 단순한 무역 상품이 아니라 독점권을 지닌 먹거리이자 생명을 변형하는 씨앗”이라며, “음식점 식자재까지 포함하는 완전표시제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은 최종 제품에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시 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간장, 식용유, 전분당 등은 GMO 원료로 만들어졌더라도 표시하지 않고 유통된다.
완전표시제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GMO 원료 사용 여부 자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겠다는 제도적 접근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과학보다 감정에 근거한 낙인 효과"라는 반론도 거세다.
식품과학계는 완전표시제가 GMO를 유해물질처럼 간주하게 만드는 '정치적 규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식품과학 교수는 “알 권리는 위해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때 의미가 있다”며 “GMO는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수십 년간 검증된 기술인데 표시 의무화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미국국립과학한림원, 유럽식품안전청(EFSA) 등 국제기구들은 “GMO 식품이 일반 식품보다 건강에 더 위험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반복해서 밝혀왔다.
표시제의 본질은 소비자 정보 제공에 있지만 GMO 표시가 ‘위해 여부’가 아닌 단순한 원료 사용 사실을 고지하는 것이라면 정보 왜곡의 가능성도 있다.
한 안전성평가 전문가는 “DNA나 단백질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도 GMO 표시를 한다면 과학적으로 무해한 제품도 소비자가 기피하게 될 수 있다”며 “진짜 필요한 정보는 가공·유통 전반에서의 안전성 관리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완전표시제가 산업계, 특히 중소기업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낮아 식품 제조에 사용되는 콩·옥수수 등의 원료 대부분을 미국·브라질 등 GMO 사용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Non-GMO 원료로 전환할 경우 원가 상승은 불가피하며, 이력추적 시스템 도입 등 추가 행정비용도 크다. 이는 곧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산업계의 입장도 엇갈린다. 송옥주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서 버거킹, 롯데리아, 노브랜드버거, 맘스터치, 프랭크버거, KFC 등 외식 프랜차이즈와 CJ제일제당, 오뚜기, 농심, 롯데웰푸드, 오리온, 해태 등 주요 식품기업 관계자 18명을 대상으로 실무 의견을 수렴했다.
의견 수렴 결과,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외식업계는 GMO 표시 확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식품 제조업계는 관리 부담과 사회적 논란 확산을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외식업계 관계자 9명 중 5명(55.6%)은 음식점 식재료에 대한 GMO 표시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으며, 찬성 이유로는 ‘신뢰도 제고’(44.4%)와 ‘소비자 요구 충족’(11.1%) 등이 꼽혔다. 반면 3명(33.3%)은 ‘신뢰도 하락’을 이유로 반대했으며, 1명(11.1%)은 유보 입장을 보였다.
반면 식품 제조업체 관계자 9명 중 66.7%는 가공식품에 대한 GMO 표시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불필요한 안전성 논란 유발’(83.3%)과 ‘식재료 가격 상승’(16.7%)이 주요 이유였다. 22.2%는 찬반을 유보했다.
음식점 식재료 표시제에 대해서도 44.4%가 반대했으며, 구체적인 반대 사유로는 ‘관리 및 업무 부담 가중’(50%), ‘신뢰도 하락’(25%), ‘매출 축소’(25%)가 제시됐다. 찬성 응답자는 22.2%에 그쳤으며, ‘신뢰도 제고’를 기대 이유로 언급했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표시제 도입에 앞서 수입구조, 유통환경, 기업 현실에 맞는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며 “유럽도 GMO 표시제를 시행 중이지만 이력 관리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도 축산물·사료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