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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시장 경제민주화 절실

동네빵집 자생 위해 동반성장 노력 필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무차별 공세에 존립기반을 위협받고 있는 동네빵집의 생존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동네빵집이 자생력을 갖춰갈 수 있도록 각 경제주체들의 동반성장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정부, 골목상권 살리기 실효성 의문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모범거래기준을 발표했다. 이 규범은 매장의 과포화 방지를 위한 신규 출점 제한거리 500m 설정, 점주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도한 매장 리뉴얼 방지, 가맹 계약 정보의 성실한 제공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기존 가맹점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점포를 열기 어려워지자 기존 점포의 권리금 폭등, 우량한 가맹본부를 선택하고자 하는 예비 가맹희망자의 창업선택권 상실과 기존 가맹점주에 대한 신규 가맹희망자의 진입장벽이 생기게 됐다. 또 획일적인 거리 제한은 다양한 시장환경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고, 소비행태·소득수준·상권의 유동인구 분포가 달라 가맹본부 경영권 침해 및 기존 가맹점주의 경영악화시 경영권 행사에도 제한이 따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프랜차이즈 업체 간에는 이같은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의 신규 출점은 제한되지만 새로 시장에 뛰어든 후발 대기업들이 같은 영업권 안에 점포를 내면 동네빵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대기업, 동반성장 노력 무색
기존 프랜차이즈 빵집의 경우 모범거래기준 발표 이후 신규 출점 증가세는 최근 눈에 띄게 둔화됐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매장 수는 9월 말 3160개로 모범거래기준 도입 이전인 지난 3월 말 3130개 대비 출점 수가 반년 만에 30개에 그쳤다. CJ푸드빌의 뚜레쥬르 매장 수도 지난달 말 1266개로 모범거래기준 도입 이전인 작년 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뚜레쥬르의 경우 매장 수가 가장 많을 때는 1400여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장 수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후발 대기업들이 제과점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서 동네빵집들의 설 땅은 여전히 좁아지고 있다.

영유통은 세계적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의 한국판매 회사인데 지난해 매출 2733억원을 기록한 대기업으로 롯데로부터 ‘블리스’의 지분 5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매일유업도 연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식품업체로 ‘블리스’의 지분 30%를 인수했다. 또 대한제분도 연 매출이 7000억원에 이르는데 호텔신라 ‘보나비’ 지분 전량을 301억원에 인수했다.
 
이들 업체는 재벌그룹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제과점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어 앞으로 제과점 시장의 경쟁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국내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1위 사업자인 카페베네가 빵집 프렌차이즈 진출을 선언해 상당한 파괴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제과점사업에서 제대로 손을 뗀 현대백화점과 호텔신라, 현대자동차 외에 기존 재벌그룹들의 제과점사업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 정용진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부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SVN 지분 40%를 감자소각 방식으로 전량 처분했을 뿐 베이커리 운영은 계속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제빵계열사인 블리스 지분을 전량 매각했지만, 제빵계열사 롯데브랑제리의 지분 90.5%를 보유하며 여전히 성업하고 있다.
◆ 프랜차이즈 빵집, 경쟁 유리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자신들이 IMF와 금융위기의 실직자로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 아래 창업한 똑같은 영세 자영업자이며 또다른 동네빵집이라고 주장한다. 동네빵집 상당수가 높은 매출과 운영의 편리성 등을 들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됐다.

그 동안 점주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도한 매장 인테리어 재시공 요구나 인테리어 시공을 특수관계에 있는 업체에 몰아주는 식의 가맹본부의 횡포가 여러 차례 지적되기도 했지만, 지난 6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프랜차이즈 빵집이 동네빵집과 견줘 평균 매출은 3배, 순익은 2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 4500개 프랜차이즈 빵집은 연간 2억19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6500개 동네빵집 매출은 7700만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은 동네빵집이 29.9%로 프랜차이즈 빵집 영업이익률 21.9% 보다 8%포인트 높았지만, 매출차가 워낙 커 프랜차이즈 빵집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훨씬 많았다.

가령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면 점주는 1년에 4800만원 수익을 얻지만, 동네빵집을 운영하면 1년 내내 일해도 2300만원 벌이 밖에 안된다. 다만 프랜차이즈는 가입비과 인테리어비 같은 초기비용 부담이 큰 편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시장경쟁에서 서비스와 품질 경쟁력 저하가 동네빵집 몰락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프랜차이즈 빵집이 누리는 브랜드 인지도·가맹본부의 마케팅·할인행사·제휴카드 할인혜택 등 각종 제공서비스 등 이미 동네빵집에 앞서는 유리한 경쟁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동네빵집, 자생력 확보 절실
한때 2만개에 육박하던 동네빵집은 지난 3년간 3000개가 사라져 현재 5000개 밖에 남지 않았다. 동네빵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등쌀에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며,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과 제과·제빵 자격증 소지자의 매장 운영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713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격증 소지자만이 매장을 운영하게 한다면, 창업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자격증 소지자로 업종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겠다는 과욕으로 비춰질 수 있다.

동네빵집의 몰락은 전적으로 프랜차이즈 탓으로만 돌리는 수 없다. 서울 홍대역 주변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이 부럽지 않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윈도 베이커리'로 불리는 소규모 동네빵집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장에 붙어 있는 작업장에서 제빵사가 바로 반죽해 구워낸 따끈따끈한 빵을 판매하는데, 빵집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갖가지 종류의 빵들을 선보여 인기가 높다. 전국 대부분의 골목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천편일률적인 맛에 식상한 소비자들,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스타일의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 채식주의자들, 외국인과 유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네빵집의 몰락 원인에는 분명 서비스와 품질의 경쟁력 상실도 큰몫을 차지했다. 최근 동네빵집이 조합을 구성해 지역의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공동으로 구매해 협업을 통해 공동마케팅을 펼쳐 위기를 돌파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라져 가는 전통 장인기술이 결합하는 '빵 문화'를 되찾아 동네빵집의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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