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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변신, 경제민주화 탈 쓴 늑대

판매농협, 골목상권 전통시장 죽이기·동반성장 역행 우려

농산물 꾸러미 배달, 하나로마트 확장, 신토불이 창구 전환, 학교급식 진출

서울농협이 판매농협으로의 변신을 내세워, 농산물 유통·판매에 공세적인 사업을 추진하기로 해 고사 위기에 내몰린 골목상권 전통시장 죽이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농협, 야심찬 서울농협의 판매농협 전환 선포
농협중앙회는 지난 6일 서울지역본부에서 ‘판매농협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서울농협 경제사업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고, 신용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서울지역 농협들이 다양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경제사업 중심의 판매농협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서울농협은 2013년까지 도시 소비자 1만명을 회원으로 농산물을 직접 공급하는 ‘농산물 꾸러미 배달사업’을 우선적으로 착수하고, 서울 전역에 ‘중소형 하나로마트’ 20개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또 농협은행 점포 내의 기존 ‘신토불이 창구’를 농축산물 전문판매점이나 ‘디지털 스토어’ 형태로 전환하는 한편, 서울 4개 권역별로 광역직거래장터를 1곳씩 운영하는 등 서울지역 곳곳에서 직거래장터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농산물 유통·판매의 소매 부문을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서울농협은 ‘서울시 학교급식 사업’과 ‘시장도매인 설립’ 등을 적극 추진해 판매채널의 도매부문 기능도 대폭 확충해 나갈 예정이다.

◆ 농협 특혜, 유통규제법에서도 예외
이에 앞서 농협하나로마트는 기존 유통법에 이어,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결국 새누리당의 반대로 처리가 무산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이하 유통규제법)에서도, 농수산물 매출이 55% 이상이면 영업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경제민주화국민본부)는 "농협이 농수산물 매출 비중과 무관하게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제의 예외로 인정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유통규제법 마련 당시 ‘전국유통상인연합회’의 이동주 정책실장은 "농수산물 매출 비율을 51%에서 55%로 늘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농협하나로마트 중에 기준에 걸릴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는 농협하나로마트에 대해서도 다른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1주일에 하루는 쉴 것'을 요구하는데, 새누리당 등에서 '그렇게 하면 농민들의 판로가 막힌다'는 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통시장, 골목 슈퍼, 농산물 공판장 등에서도 다 농산물을 취급하는 점을 감안하면, '농민들의 판로가 막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다.

◆ 판매농협, 양의 탈 쓴 늑대…골목상권 전통시장 죽이기 우려
농협하나로마트는 올들어 8월까지 전체 매출 8143억400만원, 매출이익률 14.1%로 매출이익 115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미 농협유통을 유통대기업으로 간주하고 농협하나로마트도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통규제법 마련 당시 법 개정의 취지는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주요 판매품목이 농수축산물인 상황에서 해당 상품을 55% 이상 파는 곳은 규제하지 않겠다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농협식 SSM이 유통규제법에서 벗어나 곳곳에 들어서면, 안 그래도 골목상권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기존 중소상인이나 재래상인은 전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 이번에는 농협의 최대 도시농협인 서울농협이 판매농협으로의 변신을 내세워, ‘농산물 꾸러미 배달사업’, ‘중소형 하나로마트’ 확장, ‘신토불이 창구’ 전문판매점 전환을 추진하고 심지어 학교급식과 식자재시장까지 노리는 것은 고사 위기에 내몰린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은 안중에도 없고 최소한의 상생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처사로 비춰진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농협 서울지역본부 서울지도경제팀 김기훈 차장은 “얼마 전 금천구 독산동의 하나로마트 문성점은 주위 중소상인들과 마찰 없이 성공적으로 오픈했다”며 “주변 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규모 매장을 통해 농협의 특성을 살린 판매농협 전환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협은 50~100평의 작은 규모로 매장을 개설해 SSM 논란을 피해 가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으며,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농산물에 공산품까지 판매하고 기존 농협은행 지점망까지 활용하기 때문에 유통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농협중앙회 방만경영…진정한 상생 위한 탈바꿈 기대
농협은 그 동안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설립됐지만, 농민 지원은 뒷전으로 한 채 농협인(임직원) 배불리기에만 전념한 방만경영으로 여러 차례 비난을 받아왔다.

작년 농가소득은 3015만원, 농가부채는 2603만원인 상황에서, 농협중앙회 임직원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을 넘었고, 연봉 1억원 이상 직원도 작년 2334명으로 전체 직원의 12.2%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임직원 자녀에게 지원한 학자금은 1284억원이었는데, 같은 기간 농협이 농민 자녀에게 지원한 장학금은 201명에 176억원에 불과했다.

한편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 3월 출범해 9월까지 영업이익 2조6183억원, 당기순이익 3611억원을 기록했다. 대표적 자회사인 농협은행도 같은 기간 353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농협중앙회에 납부한 명칭사용료만도 3046억원이었다. 명칭사용료는 농협의 고유목적인 농업인 지원을 위해 지주회사를 제외한 자회사가 농협중앙회에 매분기 초에 납부하는 분담금이다.

지난 6일 판매농협 전환 선포식에서 농협중앙회 김수공 농업경제대표이사는 서울농협의 경제사업 비전에 대해 “앞으로 도시농협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어 주고 있다”고 치켜세우며, “다른 도시농협들도 서울농협의 사례를 거울 삼아 우리 농산물을 책임지고 팔아 주는 판매농협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이렇게 농협은 판매농협 전환으로 본연의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농산물 판매사업을 추진키로 한다지만, NH농협금융지주를 통한 신용사업에 이어 농산물 유통·판매를 통한 경제사업까지 공세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농협은 골목상권 전통시장과 경쟁관계에 서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상생하는 모델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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