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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경제민주화 뒷전

롯데·이마트·홈플러스, 골목상권 상생 무색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기업에 편중된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 미뤄지고 있는 사이 대형마트들은 묻지마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한 해만도 83만개의 자영업체들이 폐업하며 골목상권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대선 후보들과 정치권의 진정한 경제민주화 정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후보들 ‘사전입점예고제’, ‘대형마트 입점허가제’ 공약
지난 달 29일 여의도 63빌딩에는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이 주최한 ‘골목상권 살리기운동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생업을 놓고 이른 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한 직능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 날 행사장은 전국적으로 1000만명에 달하는 직능소상공인과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자영업자들을 대표한 참석자들로 성황을 이뤄 이들이 느끼는 생계의 다급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들의 표심을 의식한 대선후보 3인도 나란히 참석해 자신이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라며 각종 공약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대형유통업체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 억제를 위해 대형유통업체의 중소도시 진입규제와, 대형마트의 사업 개시 전에 사전 신고와 지역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사전입점예고제’를 법제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대형마트 입점허가제’를 도입해 대형유통업체의 입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대형마트·SSM의 중소도시 출점 자제, 월 2회 자율 휴무 실시
지난 15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서울팔래스호텔에서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열어 대형유통업체와 전통시장·중소 상인 간의 상생 방안을 협의했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2015년까지 인구 30만 미만의 중소 도시에서 신규 점포 개설을 자제하기로 했고, GS리테일, 롯데슈퍼,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에브리데이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같은 시기까지 인구 10만 미만 도시의 출점을 스스로 억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또 대형마트와 SSM은 내달 16일 주간부터 월 2회 이내의 범위에서 평일 영업도 쉬기로 했다. 특히 쇼핑센터 등에 입점해 실질적으로 대형마트로 운영 중인 점포도 자율 휴무에 동참키로 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통과
지난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4시간 줄이고 의무휴업일을 월 3일 이내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처리,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 개정안에는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거나 골목상권 지역(전통상업보존구역)에 준대규모점포를 개설해 등록을 신청할 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건을 강화하고, 등록 신청 30일 전에 지자체장에게 입점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사전입점예고제' 도입도 포함됐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무산
그러나 지난 21일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새누리당의 반대로 상정 자체가 연기됐다.

민주당은 개정안 처리를 다시 시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새누리당이 소극적이라 12월9일까지인 정기국회 내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불과 한 달 전 여의도에서 열린 ‘골목상권 살리기운동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는 “우리 경제사회에는 대기업만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소기업, 소상공인, 생계형 자영업자 들을 “뿌리경제를 지탱하고 키워가는 귀하고 소중한 주역들”로 치켜세웠다. “어느 누구도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박 후보의 호소가 허탈하게 들리는 대목이다.


법안처리 혼선 속 대형마트 묻지마 확장
이처럼 정치권이 법안처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사이 그동안 휴일 의무휴업을 둘러싸고 지자체와 소송을 벌이며 갈등을 빚어온 대형유통업체들은 또다시 신규 점포를 개점하거나 출점을 서두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2일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입점이 미뤄져 온 홈플러스가 인천 숭의동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문을 열었다. 그 동안 용현시장 등 인근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발에 밀려 당초 2013년 3월 개점하려던 홈플러스가 계획을 앞당겨 행정절차를 마무리 짓고 4개월 앞당겨 이날 개점한 것이다.

홈플러스는 서울 합정역 사거리 앞 주상복합건물 입점을 준비 중이고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상인들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로 22일 저녁 촛불만 켠 채 시장을 열었다.

홈플러스는 또 지난달 초 경북 경주시의 (주)밸류인사이트리테일가 건축허가를 신청한 경주시의 복합상가에 입점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도 대우조선해양건설이 거제시 옥포에 분양 중인 '엘크루 랜드마크’에 입점 예정이고 지역 중소 상공인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600만 자영업자, '마트 계약사원'하라고?
한편 대형유통업체를 등에 업은 '대형마트 농어민·중소기업·임대상인 생존대책 위원회(가칭)’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반발해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00여명의 유통업체 납품 상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500만 농어민·중소상인·임대소상인을 대표한다며 대형마트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입점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형유통업체들이 600만 자영업자들은 모두 '마트 계약사원'이 되라는 식으로 사태를 이끌며 서민들의 편만 가르고 있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상생과 동반성장 이끄는 경제민주화 정책 시급
1999년 46조원에 이르던 전통시장의 매출액은 현재 24조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대형마트 매출액은 7조원에서 36조원으로 7배나 증가했다. 그 사이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은 2007년 이래 최고치인 83만명으로 전체 개인사업자의 16%에 달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영업규제를 단순히 골목상권과 대형마트 간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 가고 있지만, 유통시장의 대형화와 고급화, 독점화는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편리성 이상으로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차기 정부를 이끌 대선 후보들과 국회는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한표에 매달려 이벤트성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내뱉은 공약에 성실히 책임지고 사회구성원들이 상생하며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진정한 경제민주화 정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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