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측이 강화된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월령제한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
농림부가 이같은 내용의 한미 쇠고기 협상 방침을 지난 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만약 이 '조건부 개방안'이 타결될 경우 모든 연령의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는 시기는 언제가 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 안에서는 미국이 1~2년내 '동물성사료 규제 강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미국 의회와 축산업계의 반발과 유예기간 등까지 고려할 때 시행까지 최소 5년이상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미국이 이 조건을 붙인 우리측의 개방안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란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란 소의 뇌.내장 등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원료로 만든 동물성사료를 다른 가축들에 먹이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다. 당장 쇠고기 생산 과정에서는 SRM이 제거된다 해도, SRM을 사료로 만들면 돼지.닭 등이 광우병에 걸리거나 다시 이 동물들이 원료가 된 사료를 먹은 소가 감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교차감염' 우려 때문에 영국 등 유럽 나라들과 일본 등은 현재 소 도축 과정에서 SRM은 전량 폐기.소각하고 다른 동물용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나 지난 98년 시작된 현행 미국의 동물성 사료 규제는 '소.양 등 반추동물에서 나온 단백질 부산물을 다시 반추동물에 먹이지 못한다'는 것으로, 유럽과 일본 등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소에서 나온 SRM이 반추동물이 아닌 돼지나 고양이 등의 사료로 사용하는데 제한이 없다.
우리 정부가 '현행 30개월 미만'이라는 미국 쇠고기 연령 제한을 완전히 푸는 전제 조건으로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 강화'를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 역시 지난해 5월 미국에 광우병위험 등급 가운데 두 번째인 '광우병위험통제국'을 부여하면서 이같은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와 이력추적제 등의 보완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 "美 의지있다면 1~2년내 갖출 수 있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의지만 갖고 추진하면 1~2년안에는 유럽과 일본 수준의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이미 지난 2005년 식품의약국(FDA) 주도로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 강화를 입법예고한 바 있는 데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체결국인 캐나다가 이미 작년 7월부터 강화된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같은 검역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NAFTA 협정국으로서 미국도 이를 마냥 미룰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우리측의 '단계적 개방'안을 수용할 경우, 이같은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1~2년안에 '30개월 이상'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수 있게 된다.
◇ 5년이상 걸릴 수도..美 수용 가능성 낮아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이 '동물성사료 규제 강화' 조건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2005년 미국 행정부가 입법예고한 규제 강화안도 당시 축산업계의 강한 요구로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 축산업계로서는 동물성 사료 규제가 추가될 경우 막대한 투자와 손실이 불가피하다. SRM을 따로 분류하고 소각하는 시설을 새로 지어야할 뿐 아니라,소 한마리를 잡을 때 20㎏ 정도 나오는 SRM 등 부산물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돈 한푼 받지 못하고 태워버려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의회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축산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올해안에 서둘러 동물성사료 규제 강화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선 이후 최대한 빨리, 내년이나 그 다음해 의회를 통과한다해도 미국 전 지역의 축산농가가 관련 시설을 갖추는데 걸리는 시간과 적용 유예 기간 등을 모두 감안할 경우 5년이내 본격 시행도 불투명하다는 전망들이 많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의 박상표 정책국장은 "미국에서 복제동물 상업화가 허용되기까지 8년이 걸렸고, 내성 문제로 가금류에 일부 항생제 투입을 금지하는데 5년이 걸렸다"며 "더구나 동물성사료 규제 건은 축산업계의 반발이 심한만큼 유예기간 등을 거쳐 시행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같은 내부 상황 등으로 미뤄 지금까지 "OIE 기준에 따라 당장 연령제한을 두지 말고 모든 쇠고기를 개방하라"고 압박해온 미국측이 "동물성 사료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에 쇠고기 연령 제한을 풀어준다"는 조건을 선듯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농림부의 '조건부, 단계적 개방안'은 FTA를 앞세운 외교통상부 등의 쇠고기 개방 압력과 위생.안전에 대한 국민 여론, 축산업계의 반발 사이에서 고심 끝에 나온 '절충적 입장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기준에 따른 개방'이라는 방향은 외교통상부 등과 맞춰 명시해주되, '안전 장치 강화'라는 조건을 붙여 여론의 '직무유기' 비난을 피하고 국내 축산업계가 충격에 대비할 시간도 주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