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일본 동경제대 초대 내과 과장으로 부임한 독일 의사 벨쯔 박사는 당시 일본인들의 식생활에 깜짝 놀랐다.
단백질의 섭취가 형편없이 적고 단백질의 주공급원인 고기를 구하기도 힘든 생활 수준이었다.
비타민 섭취는 더욱 말이 아니었다. 벨쯔 박사는 돈 안 들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한 끝에 다음과 같은 식생활 방법을 권장하였다.
"구하기 쉬운 땅콩과 두부로 단백질 섭취를, 보리밥으로 비타민 공급을." 이 같은 그의 고심은 궁여지책이긴 하나 당뇨병을 포함한 모든 성인병, 노인병 예방과 치료의 값진 처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무려 100년 이상이 지나 의학과 식생활, 경제력 등의 변화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아진 오늘에도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당뇨병을 포함한 성인병에 보리밥이 좋다’는 딱한 속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보리가 열량(칼로리)이 쌀보다 더 적은 것은 아니다. 쌀이든 보리든 똑같이 100그램당 340칼로리의 열량이 들어 있다. 보리에 섬유소, 비타민 등이 쌀보다 약간 더 들어있다고 보리밥 하나로 당뇨병에 무턱대고 더 좋은 일은 아니다.
우리의 실정에서 섬유소와 비타민은 이미 다양한 야채 식품을 통해 넉넉히 먹고 있다. 별난 경우를 제외하곤.
설령 비타민 부족증일지라도 잘 조제된 비타민제제들이 여럿 나와 있는 터에 꽁보리밥으로 비타민을 공급한다는 것은 비행기를 버리고 마차를 타고 서울서 부산에 가는 것과 다름 아니다.
보리밥, 보리 혼식은 주식의 섭취 방법으로 중요한 한가지임에 틀림없다. 당뇨병 환자들 중에도 보리밥이나 보리 혼식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좋아하는 이는 순보리밥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른 것이지 당뇨병에 보리밥이 이롭기 때문은 전연 아니다. 전혀 입맛이 당기지 않는 것을 먹으면서 보리밥의 당뇨병 치료 신통력을 기대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특히 치아가 안 좋고 소화 기능이 떨어져 있는 노인 당뇨병 환자들이 보리밥에 매달리는 것은 안타깝다.
올바른 당뇨병 식사 요법은 어느 한두 가지 특정 식품을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당뇨병에는 ‘식이 요법’을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식이요법이란 말은 특정 식품의 효과를 기대하는 듯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음식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들을 어떻게 즐기며 먹어야 하느냐는 뜻에서 ‘식사 요법’ 이라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뇨병 식사 요법의 요체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에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식품, 그것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식품에 매달려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주 그릇된 당뇨병 식사 요법인 것이다.
다른 모든 성인병들과 마찬가지로 당뇨병도 하루아침에 호전되는 병이 아니다.
꾸준하고 올바른 식사 요법을 근간으로 하여 보다 간편한 식생활을 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 당뇨병 식사 요법을 한다고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 동료들과의 회식을 멀리하고 특이 식품을 찾아 정력과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은 절대로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니다.
여러 가지 식품을 골고루 기호에 맞게 즐기면서 한 가지 영양소에 치우치는 편식을 하지 않는 그 자체가 바로 훌륭한 당뇨병의 식사 요법인 것이다.
즉, ‘알맞게’ ‘골고루’ ‘제때에’ 먹는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결국, 당뇨병에서 쌀밥을 먹느냐 보리밥을 먹느냐의 선택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입맛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