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설탕값 조정시 또 올릴까 우려
제과와 관련된 원재료들의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초 설탕 가격이 8.3% 인상된 데에 이어 밀가루 가격도 인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밀의 경우 2008년 겪었던 곡물파동 재현을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졸이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3위 밀수출국 러시아가 지난 6월부터 가뭄, 산불 등으로 농사를 망쳐 생산량이 예년의 1/3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국 내 밀 소비량 부족현상에 대비해 러시아정부는 8월 15일부터 곡물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웃나라인 우크라이나에서도 지난 8월 17일 곡물수출금지령을 내렸으며 카자흐스탄에서는 관세동맹을 맺고 있는 러시아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다른 나라로의 수출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량이 부족해지자 국제 밀가루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8월 19일(현지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가는 전일대비 25.5달러(3.7%) 오른 부셸당 714.2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7월 20일 부셸당 577달러보다 137.25달러(23.79%)나 오른 수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08년에 나타났던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현상)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1위 밀 수출국인 미국의 밀 작황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 밀 수출이 36%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국내 밀가루 가격도 한동안은 인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분업체들이 3~4개월 분량의 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탕 가격도 불안정하다. 먼저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세계 최대 원당 생산국 인도는 6월과 7월 강수량 부족으로 생산량이 떨어졌고, 브라질에서는 폭우로 원당 수출선 수송에 차질이 빚어져 국제 원당 가격이 상승했다.
국내 설탕가는 8월 초 8.3% 인상됐다. 하지만 이번 인상분이 최근 국제 원당 가격 상승과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가격 인상은 올해 초 브라질과 인도의 사탕수수 작황 불안정으로 원당 가격이 급상승했던 시기의 인상분이 반영된 것이다.
원당을 수입해 정제 과정을 거쳐 설탕을 생산하는 업계 특성상 올해 초 인상분의 반영에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거기에 8.3%라는 수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평균 인상분(10.3%)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움직임만 있을 뿐 아직 ‘원자재 가격’을 인상한 곳은 없다. 또 밀가루 및 설탕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소비자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3개월 가량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달에 원재료값이 올랐다면 이것이 제조사의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추석 이후 쯤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롯데제과와 해태음료 등 제과 및 음료 제조업체에서 벌써부터 출고가격을 올리고 있다. 가격 인상의 이유는 하나같이 원재료 값 상승이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달 롯데제과 꼬깔콘(67g)의 가격이 1000원에서 1200원, 자일리톨껌(17g)은 500원에서 700원으로 인상됐다.
앞서 7월에는 크라운해태제과 상품인 크라운 초코하임(47g)이 1000원에서 1200원, 쿠크다스(144g)가 2000원에서 2400으로 가격이 각각 상승했다.
양산빵 업체들도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샤니는 이달 스위트페스트리(95g)와 단판빵(70g) 등 10여 개의 빵제품 가격을 600~700원 대에서 700~800원으로 각각 100원 씩 올렸다. 삼립식품 크림빵(70g)의 가격도 600원에서 700원으로 인상되는 등 삼립빵도 100~200원 씩 상승곡선을 그렸다.
음료 업계에도 가격인상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코카콜라음료의 코카콜라(300㎖), 동아오츠카의 포카리스웨트(250㎖,1.5ℓ), 데미소다(250㎖), 오렌씨파인(1.5ℓ)등의 가격이 지난달부터 4~17% 정도 뛰었다.
보해양조의 보해복분자주(375㎖)와 복분자주(187㎖) 가격도 이달 초부터 일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2~8% 상승세를 보였다.
이 같은 가공업체들의 발 빠른 움직임에 대해 소비자들은 물론 원재료 공급업계의 시선도 따가울 수밖에 없다. 이는 밀가루를 가공해 생산하는 식품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지만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내려갔을 경우에도 원가하락분을 가격에 반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밀가루 가격은 지난 2008년 4월 16% 인상이후 정부의 가격제한과 제분업계의 노력, 국제밀가격 안정 등으로 세 차례 가격이 내렸고 약 20~30%의 인하효과가 발생했다.
반면 제과·제빵 등 밀가루를 가공하는 식품업계 사정은 다르다. 밀가루 가격이 오를 때엔 동시에 제품값을 올렸지만 밀가루 가격이 내릴 때엔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에 대한 책임을 제분업계에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식품 가공업체의 사정이 있겠지만 가격을 올리면 인상책임을 제분업체에 넘기고 가격을 내리면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한 제분업계 관계자의 말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 제과업계의 형태다.
특히 과자와 라면의 주요 고객이 서민과 어린이, 여성 등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계층들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원가가 오르기도 전에 재빨리 가격 인상에 나섰다가 반대의 경우엔 최대한 천천히 조금씩 가격을 낮추는 제과업체들의 형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가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