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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막걸리 업계 생존권 사수 나서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입에 업계 반발이 거세다. 중소기업이 애써 키운 사장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대기업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막강한 자본력의 대기업이 들이닥치면 영세 업체는 당할 수밖에 없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고 시장질서 역시 어지러워질 수밖에 어지럽힌다. 지금 막걸리 시장을 넘보고 있는 기업들은 CJ제일제당 오리온 진로 롯데 농심 샘표식품 등은 탄탄한 대기업들이다.

지금 국내에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들이 이들과 경쟁을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지난 달 13일 한국막걸리진흥협회가 출범한 이유도 대기업들이 잇달아 막걸리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공동으로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22개 중소 막걸리업체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하명희 이동주조 대표는 “현재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가 뚜렷해지면서 업체 내에서 ‘이러다가는 살아남을 길이 없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전국의 막걸리업체는 줄잡아 700여 곳에 달한다. 막걸리 제조와 판매에 종사하는 인원만도 1만여 명을 넘는다. 이들에게 대기업의 진입은 위협적이다.

하 회장은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에 대해 “막걸리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면 기존의 중소업체는 연쇄 도산할 것”이라며 “전국의 모든 중소업체들이 합심해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출을 막아낼 각오가 서 있다”고 말했다.

하 회장은 특히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출은 중소업체의 도산은 물론 수십 년 만에 활기를 띠는 막걸리산업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 회장은 협회를 출범시키며 목적을 두 가지로 잡았다. 첫 번째는 대기업의 막걸리 제조시장 진출을 막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소업체가 직접 품질개선과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막걸리 시장을 키우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대기업의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하 회장은 "중소 막걸리 업체와 상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엔 이 시장도 먹겠다는 속셈"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 회장이 대기업 직접 진출할 경우 가장 우려하는 것은 막걸리의 전통적인 맛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막걸리의 가장 큰 장점은 지역 마다 다 맛이 다르다는 데 있다. 발효주가 갖는 걸죽한 맛은 한 가지지만 각 지역의 물과 쌀, 특산물을 적절하게 혼합한 막걸리의 맛은 모방을 할 수 없다.

하 회장은 "전국에 600여개의 막걸리 제조업체가 있는데 쓰이는 쌀과 물, 특산물 등에 따라 맛이 다 다른 게 막걸리가 갖는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런 전통적인 맛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생산공정이 획일화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와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막걸리의 세계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 회장의 생각이다.

하 회장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대기업이 고맙겠지만 결국 막걸리 시장은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일본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는 이동주조는 지난 3월 진출한 진로에 의해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하 회장은 "진로가 거대 유통망으로 시장을 확대한 공로가 있지만 일본인은 더 이상 막걸리의 참맛을 볼 수 없게 됐다"며 "이들은 달고 신 진로의 제품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의 전통 막걸리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전통술 막걸리와 또 업체의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 하 회장은 또 한번 전국의 업체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1일 오후 3시에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리는 ‘전국대회’가 그것이다.

이번 대회는 전국의 500여 지역 막걸리업체 대표들이 참가해 지난 7월에 열기로 했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연기된 거였다.

하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500여 지역 막걸리 업체들이 낼 목소리에 대해 “대기업이 막걸리 제조에까지 뛰어들면 절대 안 된다는 내용과 상호 협력 방안, 그리고 중소 막걸리 제조업체의 권익 보호 방안 모색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3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막걸리 시장은 지난해 4200억원으로 1년 만에 40% 컸고 2012년에는 1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실제 2009년 말 기준 전국에 가동중인 막걸리 제조업체수는 모두 533개인데, 이 가운데 67%가 연매출 1억원에도 못 미치는 영세업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전국대회까지 열어가며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