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림에는 약이 되는 식물이 많다.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스스로 여러가지 화학 물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숲에는 많은 수의 곤충과 동물들이 있어 나무 잎을 먹어 치우는데 그 나무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다. 곤충들이 잎을 몽땅 먹어 치워서 일년에 잎을 세 번이나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나무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들도 자위 수단으로 먹히지 않게 여러가지 화학 물질을 만들 어 잎에 저장해서 살아 남는 지혜를 발휘 하는데 그것이 인간에게 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에게 “지혜”란 것이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곤충이 먹으면 죽거나 해를 당하는 물질을 알아 낼까? 그런 물질을 안다고 해서 어떻게 땅에서 흡수한 성분을 이것 저것 혼합해서 그런 약이 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동물 같으면 쓰지 않는 근육이나 부위가 퇴화해서 없어지거나 또는 더 많이 쓰는 부위가 더욱 발전하는 것은 진화과정이라고 이해가 되는데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어떻게 알아내서 필요한 성분을 흙과 공기에서 찾아내서 합성을 하는지 궁금하다.
7월쯤 백두산에 가면 천지 주변에 온통 야생화가 피어 있다. 그 중에 어느 꽃은 꽃가루를 가져오는 곤충이 길을 찾기 쉽게 꽃잎에 암술로 가는 길을 그려 놓은 것 같은 꽃이 있다. 활주로 같은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암술에 다다르게 되고 일단 화분 수정을 하면 꽃잎을 오무려서 더 이상 다른 곤충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꽃이 그런 걸 어떻게 할까?
생물학자들이 뭐라고 설명한 들 신기함이 가시지는 않는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이 넓은 천지에 어떻게 까치는 자기가 까치인 줄 알아서 까치끼리 놀고 참새는 어떻게 참새인 줄 알고 자기끼리 모이는지 모르겠다. 노랑 나비가 언제 어디에서 다른 노랑나비를 만나서 샛노란 아기 노랑 나비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거울 한번 보지 않은 모든 동물이 자기와 똑같이 생긴 짝을 찾아내서 수 천만년 생명을 이어 온 데에는 무언가 서로 알아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살면서 친구를 갖거나 사랑을 하게 될 때에 자기에게 왠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능력이 발휘되어야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찾게 될 것이다. 물리적으로 같이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학적으로 성분이 같아야 길게 어울리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잘 어울리는 관계를 케미스트리(화학)가 맞는다고 얘기한다.
이혼율이 높고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요즈음의 세태는 바로 케미스트리가 맞는 사람을 찾아서 우정이나 애정을 나눌 기회가 점점 희박해지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우리의 “알아보는 능력”이 퇴화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이런 능력의 퇴화로 말미암아 잘못된 상대를 만나서 우정이 멀어지게 되거나 이혼을 하게 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지도자 선출을 잘 못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다. 임기 동안 내내 고통을 받거나 당연히 성장해야 할 사회가 정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국민은 좋은 지도자를 첫 눈에 못 알아보고 임기 말이 되어서야 눈에 보이는 것일까. 그 나라의 지도자는 그 국민의 수준 이상이 될 수 없어서인가.
내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새로 뽑은 해이다. 이제부터 정말 인재가 누구인지 가려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인데 잠정 퇴화 됐을 뿐이니 다시 잘 닦아서 지난 번 선거 때 보다 좋은 일꾼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금메달감 후보를 뽑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우면 은메달, 동메달까지도 괜찮다. 그러나 “목메달”을 뽑는 일 만은 말아야 한다. 지난 선거에 후회 하는 사람들이 손가락을 잘라버려 요즈음 손가락 없는 사람이 많다는 블랙 유머는 그래도 낫다.
이번에는 잘 못 뽑으면 금은동메달 다 놓아두고 “목메달” 뽑아 놓은 죄로 정말 목 매달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바람이나 현란한 말 솜씨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고 정말로 일 잘할 좋은 지도자를 가려보는 안목을 키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