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김장문화가 올해 12월 유네스코 등재 판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배추를 이용한 '매운맛' 김치에 편중된 김치세계화 사업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 소장은 5일 '김치,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심포지움 시작에 앞서 푸드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치세계화를 위해서는 각 지역의 독특한 김치 레시피를 보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김치는 시원한 국물 맛의 동치미, 하얀배추 그대로의 아삭한 맛을 살린 보쌈김치, 배추나 무가 아닌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만든 갓김치, 미나리 김치 등 양념이나 지역별로 그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다. 산업사회에서 맛이 획일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슬로푸드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김치야 말로 슬로푸드의 가장 적합한 음식인 것.
그러나, 오늘날 김치는 각종 무와 배추를 핵심 재료로 마늘과 고추, 소금을 원료로 해 발효시킨 것을 표준으로 삼으며 획일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광억 서울대 교수는 "김치가 하나의 발효식품 범주 안에서 숙성의 정도와 재료에 따라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은 김치가 인류 음식 가운데 차지하는 독특성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며 "고추에 초점을 맞춰 김치를 정의하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김치문화 폭을 제한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종류의 우리나라 김치가 지금처럼 획일화 된데에는 정부와 기업이 한 몫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일부 기업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맛이 매운맛인냥 김치를 더욱 맵게 만들기 위해 중국산 마와 산초를 곁들여 매운맛을 극대화 하는 작태를 보인 것.
김홍우 한식재단 사무총장은 "200여 가지가 훨씬 넘는 김치 가운데 배추김치로 한정해서 해썹을 제동한 정부의 움직임에 지역김치의 명맥을 잇고 있던 많은 김치영세업자들이 도산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도 전했다.
이어, 세계김치연구소가 펼친 '베트남 김치 페스티벌'을 예로 들며 "김치 획일화를 막고, 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 김치에 대한 새로운 시도, 김치를 문화로 인식 시키기 위해 펼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지난달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호치민 현지에서 '2013 베트남 김치 페스티벌'을 진행한 바 있다. '베트남 김치 페스티벌'은 세계인들에게 단순히 김치 맛을 볼 수 있는 시식 차원의 행사를 넘어 '김치 체험 행사', '김치 우수성 컨퍼런스'를 통해 김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김치를 한국 문화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 베트남 식품 학계에 한국 발효과학을 소개함으로써 김치 세계화를 위한 동남아시아 교두보 확보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박완수 소장은 "세계인들은 단순한 김치 시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한국 문화로서의 김치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김치가 인문학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김치세계화 연구에 있어서 제조법, 조리법, 영양, 기능성, 재료 등 자연과학 영역에 편중됨으로써 '김치 세계화'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 소장은 "원료생산부터 김치를 만들어 먹는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문화 현상, 즉 김장문화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요소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김치를 단순한 음식이 아닌 우리의 멋진 문화로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 그것을 세계인들에게 전달 해 가는 것이 김치와 한식을 세계화 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이번 심포지움을 출발점으로 김치에 관한 학문이 기존의 자연과학적 R&D 분야와 인문사회적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학문 범주로 '김치학'이 정립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심포지움을 위해 약 1년 여를 준비해온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학 정립이 해외의 음식학,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학문분과로 또 다른 차원의 김치 세계화가 될 수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박완수 소장은 "유네스코 등재와 더불어 김치가 한국 안에서도 굳건히 자리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김치를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편, 이번 '김치,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심포지움은 세계김치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주최, 미래창조과학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재청, 한식재단, 네이버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서울대 김광억 교수의 기조연설을 필두로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의미 ▲향후 과제(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남성들의 김장스트레스 ▲김치산업화의 촉발요인이 된 재외한국인의 김치정체성 ▲김장보너스 지급날에 맞춰 바뀐 김장날짜의 변화상 등을 기록 자료를 통해 제시한 한국 김장문화의 전개양상(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박사) ▲사회 환경과 생활양상 변화에 따라 바뀌어 온 김치재료와 제조기술의 변화상(조재선 경희대 명예교수) ▲김치냉장고의 탄생과 근현대화 과정을 통해 본 김장문화의 변화와 지속(강정원 서울대교수) ▲김치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기까지 김치 레시피 정착에 영향을 미친 사회경제적 요인(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김치학 기반으로서 음식생태학의 가능성(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 ▲민족과 젠더, 계급이라는 함의를 포함한 음식으로서 김장문화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한경구 서울대교수)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또한, 일본의 아사쿠라토시오 교수(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 중국의 자오롱강 교수(절강공상대), 리우시아오춘 교수(광주중산대)가 참석하여 일본, 중국한족, 독특한 건축양식의 가옥인 토루(土樓)로 유명한 광동 객가족(客家族)의 절임채소문화와 김장문화를 상호 비교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