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의 소금전쟁이 불붙고 있다.
소금의 주요 성분인 나트륨이 현대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좀 더 인체에 무해한 소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부터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은 천일염이다. 2008년부터 '식품'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소금이 사용되는 음식이라면 어디든지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국내 소금시장 판도는 역시 이미 천일염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1300억원대에 이르는 국내 식품용 소금 시장에서 국내 천일염은 500억원, 수입산 천일염이 900억원 규모로 천일염 시장은 이미 일반 소금시장 규모를 넘어섰다.
고급 제품 개발과 함께 향후 천일염 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2013년 1500억원, 2015년 3000억원에 이른 뒤 10년 뒤인 2020년엔 지금의 5배 이상인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앞다퉈 천일염 제품을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말 전남 신안에서 생산된 100% 국내산 천일염제품 '100% 신안천일염 오천년의 신비'를 시장에 내놓았고, 대상 청정원은 '바다소금 요리염'으로 천일염 시장에 뛰어들었다.
샘표식품은 '신안바다 천일염' '소금요정 천일염'을, 사조해표는 '3년 묵은 천일염' 등을 내놓고 천일염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신안메이드의 '3년 묵은 천일염', 레퓨레의 '김대감집 맛의 비밀 3증3포' 등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CJ.대상 현지 종합처리장 준공
일반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소금을 천일염으로 바꾸는 경향도 두드러지다. CJ제일제당은 자사의 다시다 제품인 '산들애'의 모든 제품에 천일염을 사용하고 있고, 농심은 대표 스낵인 '새우깡'에 신안군 천일염을 쓴다. 사조그룹은 천일염을 사용해 만든 고추장, 된장, 쌈장을 출시했다.
특히 식품업계 오랜 라이벌인 대상과 CJ제일제당이 천일염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먼저 신호탄을 쏜 곳은 대상이다.
지난 8월, 대상은 국내 대표 천일염 산지인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서 천일염 산지종합처리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곳 처리장에선 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모아 세척, 탈수, 건조 등 가공뿐만 아니라 숙성 보관 및 판매까지 가능하다.
이어 일주일 뒤에는 CJ제일제당이 신안군 신의면에 천일염 생산공장을 열었다. 갯벌 염전에서 채취한 소금을 가공해 천일염 완제품을 연간 2만 톤까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공장을 세우면서 두 업체는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현지 천일염 농가와 손을 맞잡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상은 지난해 10월 신안군 도초면 천일염 생산자와 함께 농업회사법인 ‘신안천일염’을 공동 설립하고 산지처리장 건립을 본격 추진해왔다.
CJ제일제당 역시 올 1월 신의도 염전을 소유한 어민 83명과 ‘신의도 천일염’을 세워 현지 어민에게 거의 절반(48%)에 달하는 지분을 내줬다.
투자 경쟁 또한 치열하다. 대상은 2014년까지 신안군 도초면을 포함한 5개 지역 6만6000㎡에 총 147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매량은 14만 톤까지 확대하고 연간 2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포부다. CJ제일제당은 공장 부지 2만 4211㎡에 93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했다. 향후 7종의 제품을 생산, 5년 안에 매출 240억원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영세 생산농가 고사 위기
그러나 대기업 천일염 사업 진출에 장밋빛 외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자본 유입으로 인해 영세 생산농가가 고사(枯死)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시선도 크다.
대상과 CJ제일제당이라는 두 맞수업체의 동시 진출에 따라 경쟁 ‘과열’ 양상도 우려된다. 이들 업체의 각축전은 생산 공장 설립 이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안섬의 보배’ ‘오천년의 신비’라는 브랜드를 각각 내세운 두 식품 대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인터넷 쇼핑몰 등의 판로를 통해 자체 브랜드로 천일염 제품을 판매해오던 중소 생산업체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생산시설 노후화, 품질인증제 미비, 유통구조 왜곡 등 국내 천일염 산업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지 않은 한 대기업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영세한 독립 생산농가들에 대한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천일염에 대한 관리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선 결국 최신 생산설비와 유통력을 갖춘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유통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도매상들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규모가 영세한 천일염 생산자간의 가격 경쟁이나 자체 보관 물량을 이용해 가격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제대로 된 소금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경우 중소 생산자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천일염 염전이 있는 신안군 다도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대를 위함이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천일염을 통한 산업 활성화는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