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쌀을 '미끼상품'으로 내걸면서 쌀 유통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책정한 원가 이하의 가격 때문에 생산자가 출혈 납품을 해야 하는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이로 인해 시장 가격 전체가 왜곡되면서 재래시장 등 일반 상인들까지 간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생산원가 80%에 출혈 납품= 6일 부산 동래구 A마트의 쌀 행사장. 전단지 행사상품(일명 미끼상품)으로 내놓은 20㎏ 쌀 한 포대가 3만4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다른 제품의 가격은 3만4500원이었다. 인근 B마트는 3만400원짜리 20㎏ 제품을 두 가지나 진열하고 있었다. 두 곳 모두 농협이 책정한 농민 손익분기점인 3만65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A마트는 전북 고창지역 RPC(미곡종합처리장)로부터 쌀을 대량 매입하면서 가격을 낮추고 업체 마진을 거의 붙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B마트는 "저가부터 고가 제품까지 다양한 쌀 판로를 열어놨으며, 행사기간 상품은 2~3주 동안 판매하는 만큼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남지역 RPC 관계자의 말은 달랐다. 쌀 유통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유통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가 이하의 가격에 납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또 이 관계자는 "많은 지역 RPC들이 거래 단절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감수하고 있다"며 "유통업체와의 거래가 끊기면 당장 판로가 막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경남지역 RPC의 쌀 평균 납품가격은 1월까지 20㎏ 한 포대에 3만4000원 선이었으나 각 대형 마트가 쌀을 미끼상품으로 쏟아낸 3월에는 최저 2만9000원 선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산원가의 80%에 불과한 가격이다.
◈마트 가격 때문에 소상인도 피해= 한국농민연합은 지난달 27일 "일부 유통업체가 쌀 매입 주문을 한 뒤 가격 하락 조짐이 보이면 일방적으로 매입을 취소하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또 특정지역의 출혈 납품 가격이 전국 표준 납품가가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 현상을 지적하고, 쌀 가격 왜곡으로 재배농가뿐 아니라 재래시장 소상인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마트의 낮은 쌀 가격은 시중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부전시장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전성훈(47) 씨는 "소비자들이 쌀 20㎏을 4만 원에 내놔도 비싸다며 외면해 이문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 강정현 실장은 이미 대형마트의 행사가격이 시장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싼 가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계속 저렴한 제품을 찾아 시장 전체의 쌀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강 실장은 "원가 이하 판매의 부담은 고스란히 농가로 돌아가 결국 쌀 생산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쌀 시장 왜곡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대형 유통업체에 행사 미끼상품으로 쌀을 내거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부산지역본부 진남문 지도경제팀장은 "쌀값 폭락으로 벌써부터 올 수확기를 걱정하고 있는 농가들이 유통가격 왜곡에 두 번 울고 있다"며 "이번 주 안으로 부산시내 대형 마트 관계자들과 만나 쌀 특판 행사 자제와 정상가격 환원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