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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쇠고기 파동 키우는 농식품부

미국산 쇠고기 개방의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번 광우병 파동에 냉철히 대처하지 못해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합리적.과학적 접근으로 국민을 차근차근 설득해 파문을 진정시켜야할 정부 부처가 허술한 대응, 안이한 자세, 뒷북 행정으로 문제를 자꾸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합의하고도 美동물사료조치 내용 몰라

민동석 농식품부 통상정책관이 이끄는 우리 협상단이 미국의 동물성사료조치 내용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연령 제한을 푸는데 합의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미국 쇠고기 파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은 최근 관보를 통해 "30개월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존보다 강화된 동물사료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측이 강화된 동물사료 조치를 '공포'하면 30개월이상 쇠고기도 허용하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이 공포와 함께 앞으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연령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새 조치가 뇌와 척수 단 두 가지 광우병위험물질(SRM)만, 그것도 30개월이상 소에서 나온 것만 사료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EU나 일본 등의 기준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농식품부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미국측의 조치가 30개월 이상 소에서 SRM이 있을 수 있는 뇌와 척수를 제거하고, 30개월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광우병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실제 관보 내용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따라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미국측의 미흡한 동물사료조치 자체가 논란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농식품부가 합의과정에서 미국측이 공포할 강화된 동물사료조치의 내용조차 몰랐던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합의 과정을 거론하지 않은 채 "30개월령 이하 소의 뇌와 척수는 광우병 위험물질(SRM)이 아니므로 실제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우리측이 요구한 교차오염 방지의 목적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농식품부 해명이 대부분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아 30개월령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SRM이 아닌 점 등을 (미국이)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식의 '추정'화법을 쓰고 있어,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에 조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고 미국이 2005년 10월 입안예고한 강화된 사료조치 수준을 염두에 두고 포괄적으로 합의해준 것으로 보인다.

연령제한 철폐의 중요한 전제 조건임에도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의 조치 내용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점, 미국내 관보 공포 이후에도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섣불리 대국민 설득에 나선 점 등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 정부 "오역 유감"

청와대는 12일 대변인을 통해 "미국 관보 내용을 오역해 국민께 불필요한 오해와 심려를 끼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2일자 정부의 보도자료와 미국 관보의 차이가 영문 해석 오류에 따른 것이라는 해명이다.

문제 내용의 관보 원문은 "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is also prohibited unless the cattle are less than 30 months of age, or the brains and spinal cords have been removed"이다.

즉 "30개월 미만 혹은 뇌와 척수를 제거한 소가 아니라면, 도축 검사를 받지 않아 식용으로 쓰일 수 없는 소는 동물 사료로 금지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30개월 미만 소의 경우 도축검사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동물 사료로 쓰일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앞서 소개했듯, 정부는 지난 2일 미국측 조치에 대해 "30개월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광우병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2005년 10월 미국측이 입안예고한 동물성사료조치 강화안의 내용과 같다.

그러나 현재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미국 관보와 우리 정부 해석 사이에 해석이 왜 다른지가 아닌만큼 '오역' 해명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 우리 협상단이 관보에 실릴 내용, 즉 미국의 강화된 사료금지조치 최종판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령제한 조건을 풀어줬냐는 것이고, 현재까지 농식품부 해명 등으로 미뤄봐서는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 "美동물사료조치 추가로 얻었다" 자랑

농식품부는 협상 이후 구체적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이 동물사료 조치강화를 연령폐지 철폐의 조건으로 관철시켰다는 점을 중요한 협상 성과로 강조해왔다.

한꺼번에 완전히 연령제한 빗장을 열어준게 아니라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의 공포 시점에 30개월이상 수입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난달 18일 타결 당시 보도자료 제목에도 '단계적 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이후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측이 약한 수준의 동물성사료조치를 '공포'해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연령제한은 한꺼번에 없어졌다.

이후로도 정운천 장관과 민동석 정책관은 각종 인터뷰와 상임위 질의 과정에서 "동물성사료 금지조치 강화는 OIE 규정에 없지만 우리가 추가로 얻어낸 것"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다 미국측 동물성사료 조치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면 항상 "이 부분은 OIE 규정에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라고 어설픈 논리를 폈고, 강기갑(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그러면 OIE 기준 자체가 강제 사항이 없는 권고인데 우리는 왜 연령.부위 제한을 풀었냐"고 공격하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 "복어독 빼고 먹는 것과 같아.."

농식품부는 협상 타결 직후 제기된 '굴욕 협상', '광우병 위험' 지적에 대해 과학적, 논리적 근거를 갖고 토론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고위 관계자를 매스컴에 출연시켜 협상 결과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사실상 검역 전문성 측면에서 문외한에 가까운 정운천 장관과 쇠고기 협상 수석 대표였던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이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설화(舌禍)를 자초했다.

정 장관은 과학적 설명 없이 "광우병은 구제역과 달리 전염병이 아니다"고 말하는 '무지'를 드러냈고, 민 차관보는 광우병위험물질을 복어독과 비유해 "복어독을 빼고 안심하고 마음껏 복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경솔한 발언으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농식품부와 정부는 비난 여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지난 2일 기자들을 상대로 '미국산 쇠고기 끝장 토론' 자리를 마련했으나,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진을 앞세워 한쪽 논리만 설명하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