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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둘러싼 논란이 격해지는 가운데 지난달 18일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내용으로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자체를 물리고 다시 해야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광우병 위험관리 수준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 한 재협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이와관련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은 4일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다만 일본 대만 등 주변국과 미국의 쇠고기 협상 내용을 봐가며 우리보다 강화된 기준이 논의됐다면 우리도 그 기준에 맞게 개정요구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美 광우병지위 변화없다면 불가"

현재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검역 주권을 상실하고 국민들이 광우병 위험에 노출됐다며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여권의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도 4일 미국 쇠고기 수입 관련 당.정.청 협의 직후 "대만, 일본의 (협상) 내용이 우리와 다르면 재논의가 가능한 것 아니냐. 정부가 미리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정부의 입장은 '재협상 불가'다. 이날 당.정.청 협의에 참석한 정 승 농식품부 식품산업본부장은 "미국의 광우병 상황이 크게 바뀌어 국제적으로 광우병 관련 지위에 변화가 있거나, 다른 나라의 협상 과정에서 이 지위에 변화를 줄만한 과학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재협상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입조건 협의가 가능하다는 원론적 설명만 했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작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에 부여한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에 변화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지난 18일 타결된 협상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도 "야당이 요구하는 재협상은 기존 협상을 무효로 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는 얘기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기존 협상대로 쇠고기 수입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미국이 일본, 대만과 협상을 진행 중인데 그 협상결과를 지켜본 뒤 만약 우리보다 강화된 기준이 논의됐다면 우리도 그 기준에 맞게 개정 요구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일 농식품부.보건복지가정부 장관 합동 브리핑에서도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은 재협상 가능성과 관련, "과학적 근거에 따른 협상이었고, 정치적 요구나 여론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일축한 바 있다.

◇ "수입조건 고시되기 전 가능"

그러나 이번 협상 내용이 '불평등'하다고 지적하는 통상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다르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는 "이번 협상의 합의문 부칙 1항을 보면 새 수입조건은 우리 정부의 고시가 있어야만 고시일로부터 유효하다고 명시돼 있다"며 "현재 새 수입조건이 입법예고 중이고, 고시가 되지 않은 상태인만큼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입법예고라는 것이 정확한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인만큼, 이 과정에서 반대 여론이 비등하다면 당연히 재협상을 통해 조건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가 수입국의 권리로 보장한 8단계의 '수입 위험 평가(import risk analysis)' 절차 차원에서도 아직 '종결' 단계가 아닌만큼 다시 협상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수입국은 ▲수입허용 가능성 검토 ▲수출국에 가축위생 설문서 송부 ▲답변서 검토 ▲가축위생실태 현지조사 ▲수입허용여부 결정 ▲수출국과 동물.축산물 수입위생조건안 협의 ▲수입위생조건 제정.고시 ▲수출작업장 승인.검역증명서 서식협의 등 8단계를 거쳐 수입 여부를 결정하는데, 한미 쇠고기 협상은 6번째 단계였고 현재 7번째인 '수입위생조건 제정.고시'에 있는만큼 8번째 단계를 마치기전까지는 얼마든지 앞단계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재협상을 추진할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협상력 부재'를 자인하는 셈이고, 미국으로서도 'OIE 기준대로'라는 기본 입장에서 물러날 여지가 없는만큼 실제로 재협상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