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우리도 마침내 본격적인 FTA 시대에 접어들게 됐음을 의미한다.
물론 일본과의 협상은 중단됐고 중국과는 언제 협상에 들어갈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나 한미 협상 타결에 이어 EU와도 FTA를 체결하게 되면 한국은 비로소 `FTA 지진아' 대열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EU가 지난달 하순 한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승인한 데 이어 우리 정부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협상 개시를 결정함에 따라 양측의 내부 절차는 모두 끝났고 이제는 실제 협상만 남았다.
7일 첫 협상에 돌입한 이후 양측을 오가며 협상을 계속하는데 한미 FTA에 비해 정치적,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1년여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EU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비록 미국에 비해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인구 4억8700만 명의 EU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4조3000억 달러로 미국(12조9000억 달러)에 단연 앞서는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이다.
교역액(회원국 간 역내 거래 제외) 역시 3조2000억 달러로 미국(2조9000억 달러)을 앞질렀다.
우리나라와의 교역 규모는 794억 달러로 중국에 이은 제2의 교역상대국이고 최대의 대한(對韓) 투자국이자 중국, 미국에 이은 우리나라의 3번째 투자대상국이기도 하다.
지난번 한미 FTA 때에도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처지에서 세계 최대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EU도 농산물 분야에서 공세를 펴겠지만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중시해 협상상대국의 민감 품목을 인정하는 통상정책을 펴고 있어 미국처럼 쌀이나 쇠고기로 까탈을 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이번 협상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때와 같은 국가적 혼돈 상황을 재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익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경제계와 학계, 경제단체, 연구소 등 관련자들의 의견 수렴부터 충분히 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는 게 민주국가 아닌가.
국민을 납득시키는 일을 대수롭잖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온 국민의 지혜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국가적 대사를 치르면서 정부가 해당 업계나 전문가들을 외면한 채 정보를 독점하고 혼자서 밀어붙이는 오만함도 떨쳐내야 한다.
한미 FTA의 보완 대책을 십분 재활용하는 정책 수립의 효율성이 중요한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새로운 피해 분야가 등장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등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