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K-뷰티·건기식 산업의 대표 ODM 기업 콜마그룹에서 오너 2세 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직을 둘러싸고 장남 윤상현 부회장과 장녀 윤여원 대표가 정면 충돌하면서 콜마 내부의 균열이 표면화됐다. 형제간 조화로운 공동 경영으로 알려졌던 콜마그룹 내부에 승계 갈등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임시주총 카드 꺼낸 윤상현, 윤여원 교체 시도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콜마홀딩스는 지난 2일 대전지방법원에 콜마비앤에이치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허가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안건은 윤상현 콜마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의 사내이사 신규 선임이다. 콜마홀딩스는 콜마비앤에이치 지분 44.6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임시주총 승인을 받으면 윤 대표 해임 및 이사회 재편 시도가 가능해진다.
콜마비앤에이치 현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윤여원 대표, 조영주 총괄),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윤 부회장이 이사회에 직접 진입하면서 향후 사내이사 과반 확보 후 대표이사 교체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윤 부회장 측은 그 명분으로 윤 대표의 ‘경영 부진’을 내세웠다. 윤 대표가 취임한 2020년 6069억 원이던 매출은 이후 정체되거나 감소하다가 2024년 6165억 원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1092억 원에서 246억 원으로 급감했다. 콜마홀딩스 측은 “상장사의 주주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며 경영 판단은 혈연보다 성과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례적 ‘4월 공시’ 논란…증권가 “상장사 신뢰 훼손
반면 윤여원 대표 측은 이를 성과 왜곡으로 규정하고 “세종 3공장 등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수익성을 일시적으로 낮춘 것일 뿐”이라며 반박했다. 실제로 콜마비앤에이치는 최근 1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해당 주식을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액주주 달래기이자 방어적 수단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윤 대표는 “2025년 4월 실적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9.7% 증가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의 대표 교체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콜마비앤에이치의 2025년 1분기 실적은 반등과는 거리가 멀다. 15일 공시에 따르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36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7% 줄었고, 영업이익은 62.5% 급감한 36억 원에 그쳤다. 순이익은 78.3%나 감소해 실적 부진이 뚜렷했다.
더 큰 논란은 같은 날 발표된 ‘4월 실적 공정공시’에서 불거졌다. 분기 실적 발표가 의무화된 시점에 콜마비앤에이치는 정기공시 대신 4월 한 달간의 실적만을 별도 공정공시로 공개해 ‘성과 포장’ 의혹을 자초했다.
증권업계에서는 5월 15일이 1분기 실적 발표 마감일임에도 회사 측이 부진한 분기 실적을 외면하고 같은 날 4월 단기 실적만을 공정공시로 띄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상장사 기본 공시 원칙에 반하진 않지만 투자자 오인을 유도할 수 있는 ‘성과 포장’ 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사로서 보기 드문 이례적 공시에 증권가 안팎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의식한 과도한 여론전”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분기보고서상 1분기 실적은 명백한 부진이었음에도 공정공시에는 4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월 대비 49.7% 증가했다는 수치만 부각됐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 압박 속에 상장사 기본 원칙마저 흐려졌다”며 “회사의 투명성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윤동한 회장 중재 나섰지만…창업주 권위도 흔들
이 같은 갈등에 윤동한 회장이 중재자로 나섰지만 갈등 해소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15일 콜마그룹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윤 회장은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며 윤여원 대표에 힘을 실었다. 그는 “윤상현 부회장이 기존 합의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그룹의 경영 안정성과 주주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창업주로서 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콜마홀딩스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회장님의 발언은 부진한 성과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해하지만, 회사의 결정은 주주이익이 기준”이라고 반박했다. 창업주의 권위보다 실적 논리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표 대결 결과는 예측이 어렵지 않다. 콜마홀딩스가 44.63%의 지분을 갖고 있고, 윤 대표는 7.78%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한국원자력연구원(6.05%), 윤동한 회장(1.11%), 자녀 이민석·이영석(각 0.01%) 외 소액주주로 구성돼 있다. 경영 효율성 명분을 내건 윤 부회장 측에 표심이 기울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윤 회장은 자녀 간 지분을 안배하며 공동 경영 구도를 꿈꿨지만, 결국 세대 내 경영권 충돌이라는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직면한 셈이다.
한국콜마는 1990년 대웅제약 출신 윤동한 회장이 창업한 화장품·제약 OEM 전문 기업으로 출발했다. 국내 최초로 화장품 ODM(제품 기획부터 제조까지 수탁 생산) 모델을 도입했고, 이후 건강기능식품과 제약 분야까지 확장하며 K-ODM 산업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10월, 기존 법인을 ‘한국콜마홀딩스’로 전환하고, 화장품과 제약 부문을 신설 법인 ‘한국콜마’로 분리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했다. 이어 2018년에는 CJ그룹으로부터 제약사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인수해 화장품-건기식-제약의 삼각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또한 2022년에는 미국 원조 콜마로부터 ‘콜마(KOLMAR)’ 글로벌 상표권을 100% 인수, 브랜드 주권을 확보하며 글로벌 ODM 기업으로서 정체성과 확장성을 강화했다.
지주사인 한국콜마홀딩스가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며, 윤동한 회장이 2019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장남 윤상현 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전면 승계한 상태다. 장녀 윤여원 대표는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콜마비앤에이치를 맡아 사실상 남매 경영 체제를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윤상현 부회장이 윤여원 대표의 경영 성과에 제동을 걸고, 직접 이사회 재편에 나서면서 가족 간 균형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 복귀가 아닌 이사회 장악형 승계는 외부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는 콜마의 경영 투명성과 장기 전략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