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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이해찬 세대와 식품업계의 닮은꼴

김병조 편집국장
며칠 전 뜻밖에 아찔한 긴장감을 맛본 적이 있다. 평소 급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전화 연락을 하지 않는 아내가 야밤에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이 하루 종일 연락 두절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치면서 취기가 사라질 정도로 긴장감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수십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도 않고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온 아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하며 방황하다 들어온 것이었다. 13일에 발표가 난 수능시험 성적 때문이었다.

표준점수제에 따른 편차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지망하기
에는 예상외로 낮은 점수가 나와서 당황한데다가 재수를 하자니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이래저래 고민이 되어 거리를 방황했다는 것이었다.

“아빠도 재수를 했고 삼촌도 재수를 했다”, “재수는 필수고 삼수는 선택이다”는 말을 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소신껏 지망해보고 안되면 재수를 하라고 마음을 진정시켜주었지만 고개를 떨군 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는 아들 녀석이 여간 측은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소위 말하는 ‘이해찬 세대’다. 이해찬 총리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시절 만들어 낸 7차교육과정에 의해 수능시험을 치른 첫 세대다.

아들이 입학할 때 학부모를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7차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뭐가 뭔지 알아듣지 못했고, 지금도 솔직히 아들이 어떤 입시제도하에서 대학입시를 치르고 있는지 거의 모른다. 다만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아들의 말과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 뭔가 혼란스럽고 문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할뿐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뜻밖에 경험한 아들의 혼란과 방황을 보면서 지난 6월 벌어진 ‘불량만두’ 사건과 이로 인해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한 만두업체의 젊은 사장이 생각났다. 아무 일 없이 잘 나가던 회사가 전혀 예상 못한 사건으로 부도가 났을 때 경영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만두업체 뿐만 아니라 식품업계 전반이 ‘불량만두’ 사건으로 예상 밖의 충격을 받고 혼란을 겪었고 그 같은 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불량만두’ 사건은 업체의 잘못이 없는 가운데 미숙행정과 언론의 과잉보도가 빚어낸 해프닝으로 끝났는데도 이로 인한 정부와 소비자의 업체 목 죄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해찬 세대’인 아들이나 식품업계나 경험하지 못한 예상 밖의 복병으로 혼란을 겪고 뜻하지 않은 방황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은꼴이다. 둘 다 불확실성 속에 처해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불확실성 속에 처해 있는 사람이나 기업은 매사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가운데서 정책이 오락가락하게 될 경우 수요자들은 실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는 의외로 커진다.

7차교육과정에 의해 처음 치러진 입시에서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들을 볼 때 미숙한 행정, 오락가락하는 정책 등으로 역시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식품업계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기업을 살리려는 의지보다는 의욕을 꺾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나 미숙한 행정처리로 지난 한해 식품업체들이 쓸데없는 혼란을 겪고 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것을 회고하면 더욱 그렇다.

모름지기 국민이나 기업이 편안하게 자기 맡은 바 일에 충실하려면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사회는 제대로 된 법과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예측이 불가능해 국민이나 기업이 이를 수용하기 힘들면 제대로 된 개혁이 아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만들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며 또 다른 차원의 독재나 다름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시키고 예측 가능한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성숙된 민주사회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