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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가격억제 물가안정 달성 못해

규제정책이 꼼수인상과 풍선효과 유발

먹거리의 가격인상 억제에 정부 물가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물가인상이 한꺼번에 몰리는 풍선효과와 꼼수인상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고 물가안정이란 정책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고삐풀린 물가와 가격억제의 악순환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사이 식품제조업체들은 일제히 제품가격인상에 동참했다.


CJ제일제당은 된장, 고추장, 밀가루, 두부, 콩나물, 식용유 가격을 인상했고 동아원과 대한제분도 밀가루 가격을 올렸다. 주류업계는 소주가격을 8%이상 인상했고 매일유업 등 유가공업계도 분유가격을 올리며 가격인상에 나섰다.


소비재 가격이 둑터지 듯 올라가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가격인상요인을 최소화하고 부당편승 인상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등 관계당국이 물가안정에 나서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삼립식품은 밀가루 가격인상 이후 올렸던 66개 빵의 가격인상을 철회했고 제일제당은 설탕가격을 내리며 정부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고삐풀린 먹거리 가격도 잡혔다. 정권교체기 또는 매년말과 연초 반복돼 온 일이다.

 

◈ 꼼수 가격인상과 풍선효과

 

식음료 제조업체들이 한꺼번에 가격 인상에 나섰던 것은 정권교체기를 놓치면 가격인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식품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가격인상 요인이 있어도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물가당국의 감시가 느슨해지는 정권교체기에 가격인상이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풍선효과’라고 표현하거나 두더지 잡기에 비유한다. 정부는 손쉬운 물가관리의 방편으로 가격억제를 가장 즐겨 사용한다. 먹거리나 공공요금 등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을 정해 가격인상억제에 나서는 것이다.


SPC처럼 올렸던 가격이 철회되는 경우는 다반사로 발생한다. 2011년 12월 풀무원은 자사제품 가격을 7%가량 올렸다가 몇시간만에 철회했고 그 전 해에도 비슷한 전철을 되풀이했다.오비맥주가 2011년 12월초 맥주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한 지 3일만에 가격인상보류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경우다.


가격을 올려야할 때 올리지 못한다고 가격인상요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기만 조금 늦춰질 뿐 업계는 반드시 가격을 올린다. 인위적으로 억제된 가격들이 한꺼번에 오르는 것이 바로 풍선효과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격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 식음료업계가 물가인상의 주범?

 

대통령이 물가관리를 지시하면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잡기에 나선다. 물가관리의 주요 대상품목은 물가파급효과가 큰 교통비, 전기, 가스비 등 공공요금과 먹거리다. 소비의 빈도가 높은 품목일수록 해당품목 가격인상에서 느끼는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진다.


따라서, 정부도 파급효과가 큰 품목을 중심으로 관리할 수 밖에 없다. 가격 억제 내지는 관리의 효과가 바로바로 확실히 나타나는 이유에서다. 역으로 이 품목들이 관리되지 않으면 물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올 수도 있다.


이명박정부는 집권초 마늘과 배추, 고추 등 50여 가지 품목을 선별해 집중 관리했고(MB물가) 역대정부들도 먹거리 물가관리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품제조업체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늘 왜곡됐다. 공급이 늘어 가격이 폭락하면 바로 가격도 떨어지지만 반대로 공급이 달려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도 가격은 별 변동이 없다.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급을 늘리거나 인위적으로 가격인상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B식품업체 직원은 "정부가 가격을 제대로 못 올리게 하니까 식품업은 제일 힘든 것이 가격"이라며 "물가잡기는 전 산업분야에서 오로지 식품만 타깃이 되고 새정부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먹거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

 

통계청은 매년 소비자 물가지수를 산정하면서 개별품목이 전체 물가인상에 미치는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 품목 순위’를 발표한다.


2011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조사대상 품목 481개의 물가가중치(높을수록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상위 20위 품목안에 가공식품이나 농수축산물은 한개도 없다. 1,2위는 전세와 월세, 3위 휘발유, 4위 이동전화료, 5위 전기료이다.


481개 가운데 먹거리만 분류할 경우 1위 돼지고기, 2위 쇠고기, 3위 쌀, 4위 우유, 5위 담배, 6위 빵이었고 그 뒤로 사과, 라면, 아이스크림, 발효유, 달걀, 스낵과자, 귤, 떡 등이 뒤를 이었다. 물가에 미치는 가중치는 전부 1미만이다. 참고로 가중치가 가장 높은 전세는 6.13이다. 이 통계는 먹거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문제는 고환율 정책과 후진적 유통구조

 

가격인상억제는 물가당국이 가장 즐겨쓰는 물가대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한국의 후진적 유통구조개선을 위해 어떤 정권도 제대로 손을 쓴 적이 없었다.


질좋은 수입 쇠고기가 쏟아져 들어와도 국내 한우가격은 그대로 이고 제조와 유통과정에서 마진이 많이 붙는 의류도 대표적인 고가제품군에 속한다.


일례로 국내 쇠고기의 유통은 사육→운송→도축→운송→경매→도매상→식육포장처리→운송→소매상·음식점→소비자 등 7~8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농식품부 통계를 보면, 쇠고기의 유통마진은 2010년 40.9%, 2009년 37.5%, 2008년 41.1%로 평균 유통마진은 40%정도로 미국의 유통마진(USTR자료) 2010년도 53.6%, 2009년 57.5% 2008년 54.5%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에 고기값의 1.5%인 도축비와 운송비까지 더해져 전체 유통비용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같은 유통과정의 불합리를 수정해야 가격이 내린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농축산물 유통단계 축소를 지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30%안팎의 유통업계 입점수수료 역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포인트는 물가와 환율의 상관관계이다. 친기업정책을 표방한 이명박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수출 대기업을 위해 고환율정책을 유지해왔다. 이 덕에 수출은 늘어나고 무역수지 흑자행진이 지속됐지만 국내 물가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노무현정권 말기였던 2007년 1달러당 원화 환율은 915~945원대였지만 이명박정권 초기 1000원을 돌파한 뒤 꾸준히 1200원대 안팎의 환율을 유지했다. 환율이 오른 만큼 원당과 밀 등 가공식품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고 이는 국내 식탁물가의 부담으로 이어져 왔다.


국내 소비재 가격은 특정 산업분야의 잘잘못을 떠나 정책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정부도 빠른 성과에 집착해 가격을 억제하기 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물가문제에 접근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