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볕이 더해지는 6월이 육지에서 담장을 넘어가는 붉은 장미의 계절이라면, 바다에서는 은백색으로 살이 오른 ‘병어’ 철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백색 병어가 산란기를 앞두고 가장 맛이 있을 때로, 산란기는 5월부터 8월까지이지만 산란성기인 6월에 가장 맛이 절정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서남해에 많다. 병어는 먼바다에서 살다가 유월쯤 되면 산란을 하려고 연안으로 몰려오는데 때로는 하구까지 몰린다고 한다.
좌우가 납작한 측편형 어류로 농어목 병어과의 생선으로써 우리나라 서·남해, 동중국해, 일본 남부의 연근해에 분포하며 있다.
뾰족 튀어나온 입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22㎝이고 등에서 배까지의 너비가 12㎝인 병어는 몸높이가 높고 옆으로 심하게 납작하며, 최대 60㎝까지 자란다.
몸 빛깔은 청색을 띤 은색으로 금속광택이 있으며, 비늘은 작은 원린(둥근비늘)으로서 떨어지기 쉽다. 비늘이 떨어지면 등쪽은 청회색, 배쪽은 백색을 띈다. 게다가 입이 작고 몸이 납작하고 마름모꼴로 생겨 수족관의 열대어 같기도 하고 그 몸빛이 창백하기까지 하여 깔끔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주는 어류이다.
영어 이름은 ‘버터피시(butterfish)’. 흰살생선 중에서 지방질이 높아 버터처럼 부드럽고 기름지기 때문이다.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는 가장 맛있는 생선으로 병어를 손꼽는다.
‘병어’라는 이름이 표준어지만 각 지방에 따라 전남에서는 ‘병치’, 경남에서는 ‘벵에’, 서해안에서는 ‘편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맛도 맛이려니와 병어는 금방이라도 팔딱 튀어오를 듯이 살이 탱탱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아 냄새 나고 물컹한 생선은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여름에도 손질하기가 좋다.
병어는 살이 탄력 있으며, 아가미가 선명하고 붉은색을 띠는 것이 싱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백년전부터 병어를 잡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종 때에 편찬한 동국 여지승람 증보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기도 몇몇 지방의 토산물에서 병어의 기록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병어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형태와 맛에 관해 꽤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맘때쯤 잡히는 병어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회로 먹으면 씹을수록 쫄깃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우러난다. 특히 지방이 적당히 섞인 배 부분의 고소한 맛이 가장 좋다.
회로도 먹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구이, 찜, 탕, 튀김 등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도 맛있게 요리할 수 있고, 가운데 큰 뼈 말고는 잔뼈가 없어 아이들이나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들 역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병어는 뼈가 연해서 먹기에 좋은데, 제사상에서 제일 군침이 당겨지는 음식도 병어찜이다. 튀겨 먹거나 구워 먹을 것은 나중에 따로 간하지 않고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소금을 넉넉히 뿌려 간이 잘 배도록 하고, 양념장에 조려 먹을 것은 너무 짜지 않게 소금을 살짝만 뿌려 둔다.
병어는 살이 부드럽고 담백해 어린아이, 노약자, 병후 회복식에 좋은 식품이다.
육질도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조리법이 다양해,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서도 병어감정을 상추쌈차림에 곁들여 비타민과 단백질 공급원으로 훌륭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흰살 생선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비타민 A는 체내 면역력을 길러 주며 시력을 보호해 준다. 또한 비타민 B1은 봄철 피로 해소에 좋고 비타민 E는 노화를 방지해 준다.
니아신은 피부점막을 튼튼히 하고 두뇌신경 작용을 원활케 하며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이 있다. 타우린 역시 많이 함유하고 있어 시력 보호와 빈혈 예방에 효능이 있으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을 예방한다.
그뿐만 아니라 불포화지방산인 DHA, EPA의 함량이 높아 각종 성인병 예방과 두뇌 발달에 효과가 있다.
게다가 굽기, 튀기기, 조리기해서 조리법도 다양하니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병어를 이리저리 요리해 밥상에 자주 올려도 물리지 않을 듯하다.
특히 여름이 제철인 햇감자를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냄비 바닥에 깔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병어를 고추장 양념을 끼얹어 조린 병어조림은 잃었던 여름 입맛을 되찾아 줄 만큼 맛깔스럽다.
9월 쯤 되면, 삼복더위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질 무렵이면 칠산 앞바다에 멸치떼가 몰려온다. 병어는 이 멸치떼를 쫓아와 멸치그물에 걸려들어 더위에 지쳤던 우리네 미각을 자극해 준다. 이때 걸려드는 병어떼는 그리 크지 않은 새끼병어들이다. 초가을이 되면 다시 먼 바다로 떠나 여름이 지나면 맛볼 수 없는 귀한 어류이다.
병어를 자주 섭취하는 뱃사람들은 병어를 초고추장에 먹지 않고 시큼한 묵은 김치와 함께 먹기도 하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터득한 그들만의 노하우인 만큼 먹는 방법도 특이하다.
왼손바닥에 김치와 병어를 한웅큼 올려놓고 볼때기가 터져라 한 입 가득 몰아넣는다. 이렇게 먹으면 초고추장에 먹는 것보다 훨씬 개운하고, 고소한 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병어는 여름이 제철이여서 맛이 좋을 뿐더러 값도 가장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