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농업계의 이건희', '참다래 신화 주인공' 등의 찬사와 함께 지난 2월말 농식품부 수장 자리에 오른 정운천 장관이 결국 '쇠고기 폭풍'에 휩쓸려 취임 5개월여만에 물러났다.
6일 바통을 넘겨 받은 신임 장태평 장관이 쇠고기 정국을 완만히 매듭짓고 기름.사료.비료값 급등 때문에 들끓고 있는 농심을 달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이어지는 쇠고기 여진
지난 6월 26일 새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이 발효된 뒤 한 달 보름여만에 이미 LA갈비 등 4000여t의 미국산 쇠고기가 검역을 통과, 시중에 풀렸거나 유통을 기다리고 있다.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가 전국을 뒤덮고, 무려 7차례에 걸쳐 대통령.국무총리.장관 등의 담화와 사과가 이어졌던 6월말까지의 상황에 비해 표면적으로는 '진정 국면'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쇠고기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달초 시작된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고, 하일라이트격인 청문회가 오는 18, 19일로 예정돼있다.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통상정책관 등 협상 실무진 다수가 증인으로 출석하는만큼, 농식품부로서는 '30개월이상 개방' 결정 시점을 포함한 참여정부 이후 우리측 협상 전략 변화, 한미 정상회담 일정과의 관계 등 민감한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꼼꼼히 정리해둬야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졸속 협상', '굴욕 협상'의 새로운 근거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촛불은 언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미 농식품부는 지난 4월 협상 타결 직후 '오역 파동' 등 엉성한 초기 대응으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동안 촛불을 끄기 위해 세 차례나 쏟아낸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책을 약속대로 실행에 옮기는 일도 만만치않다. 촛불에 밀려 급하게 원산지 표시제를 '64만개 모든 식당.급식소의 국.반찬 등에 들어가는 모든 쇠고기'로 확대했지만, 정부 내부에서조차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속 대상인 식당은 식당대로 "도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표시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
광우병위험물질(SRM)인 소장끝(회장원위부)을 가려내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미국산 쇠고기 내장 조직 검사 방법의 경우 검증이 더 필요하고, 향후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마찰 가능성까지 남아있다.
국내 축산업의 붕괴도 '발등의 불'이다. 4월 18일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소 값은 계속 떨어져 현재 암송아지의 경우 140만원대까지 추락, 이미 정부가 제시한 보전 기준인 165만원을 크게 밑돌고 있다.
◇ 기름.사료값 폭등에 신음하는 농어민
기름.사료.비료값 폭등에 한계를 호소하는 농어민들을 위한 실질적 생계 대책도 시급하다.
농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ℓ당 각각 651원, 503원 수준이던 농업 및 어업용 면세유 가격은 지난 6월 평균 1276원, 990원으로 96%씩 뛴 상태다.
복합비료는 20㎏ 한 포대에 9850원에서 2만2000원으로 123%, 배합사료의 경우 ㎏당 335원에서 436원으로 30% 급등했다.
농식품부는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비닐하우스 등 시설작목 농가의 단위면적 10a당 연간 소득이 488만2000원으로 지난해의 803만3000원보다 39%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름값 등 경영비가 같은 기간 955만원에서 1270만1000원으로 33% 뛰었기 때문이다.
축산 농가의 소득 감소 폭은 더 크다. 한 마리를 키우는데 필요한 경영비는 사료값 폭등영향으로 소의 경우 12%(409만9000원→458만원), 돼지는 17%(19만원→22만2000원) 늘었다.
이에 따라 소 사육 농가의 마리당 소득은 145만9000원에서 97만8000원으로 33%, 돼지는 5만6000원에서 2만4천원으로 57% 급감할 전망이다. 닭 농가의 경우 경영비가 25% 늘어 소득이 2만8000원에서 5천원으로 82%나 줄 것으로 우려된다.
농식품부 스스로도 "특히 시설 농가는 난방비 부담으로 올해 겨울을 넘기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진단한만큼, 장 장관이 1조5천억원 사료자금 융자 등 기존 대책 외에 추가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늦어지는 농어업 개혁
쇠고기 사태로 뒷전에 밀려났던 농어업 개혁과 구조조정도 과제로 남아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 "농어업을 1차산업에서 경쟁력있는 2차, 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해외 시장 개척에도 나서야한다"며 새 정부의 '공격적' 농정 방향을 밝혔고, 정 전 장관도 이에 맞춰 ▲ 시.군단위 유통회사 설립 ▲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육성 ▲ 농촌 뉴타운 건설 등의 구체적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취임 이후 5개월동안 쇠고기 문제 수습에 매달리면서, 굵직한 개혁 작업들이 대부분 구상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시.군 유통회사 프로젝트 정도가 사업 공고와 내년도 사업 신청 접수 등 본격 추진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신임 장 장관 역시 취임사에서 "우리 농어업은 수입 개방의 어려움 속에서 10여년 이상 시장이 정체돼 있다"고 진단하며 명실상부한 하나의 산업으로서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도약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련 정책 방향으로 중소 농어가 품목별 조직화를 통한 '이용과 경영의 규모화', 규제 완화, 정책금융 지원 제도 개편, 농어업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한 농어업과학기술위원회 설치,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그동안 수없이 거론돼온 우리 농정의 기본 과제로, '장태평식 농정'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