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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칼럼 - 법에 대한 신뢰

살다 보면 사람과의 사이에 이런 저런 다툼이 생기고 해결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결국 법에 호소하게 되는데 평소에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로서는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과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싫더라도 타협을 하거나 또는 억울하더라도 참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때로는 나름대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법에 호소해도 심적, 물적 피해 복구가 늦어지거나 어렵다고 판단할 때 법보다 사적인 제재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에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들어왔다고 해서 직접 보복과 제재에 나선 재벌 아버지가 재판을 받은 사건이 그런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술집 같은 곳에서 맞고 들어왔을 때 자기에게 그를 보복할 힘이 있다면 사적으로 제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이렇게 한다면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까. 세상 사람들이 법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온다
 
법원이나 검찰의 청사 앞에 가면 일인시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억울한 내용을 써서 들고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고 과연 저렇게 해서 해결이 될까 하는 안타까움도 솟는다. 그들 주장의 대부분은 판사나 검사가 판단을 잘못해서 억울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법 제도와 법관에 대한 불신에서 이런 시위를 하는 것이다.
 
최근에 장정 3명이 술에 취해서 15살 밖에 안됐지만 키가 170센티나 됐을 정도로 다 자란 가출 여학생이 돈을 훔쳤다고 뒷산에 끌고가 1시간 동안 폭행하며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돈을 훔쳤으면 법에 호소하여 처벌하면 되었을 텐데 자기들이 직접 제재하다가 아까운 인명을 뺏은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20,000원이라는 돈의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경찰에 알려도 실제로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직접 재판과 처벌까지 담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돈을 훔친 사람은 따로 있음이 밝혀졌으니 그 원한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사적인 제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법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하는 사법기관의 재판과정에서도 불만이 생겨서 반발을 하는 세상에 사적인 제재과정에 반발과 과잉대응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별 것 아닌 사안으로도 큰 불상사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이 존재한다.

다른 한 편으로 폭행을 당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수사가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항의하면서 분신 자살한 케이스가 있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억울한 일이 있었고 정당하게 법에 호소했음에도 해결할 길이 없다고 느낀 피해자가 분신으로 억울함을 표시한 것이다.

소중한 목숨을 버린 고인의 생명 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할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법에 호소하였음에도 그 법이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믿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결국은 법에 맡기는 길이 최선의 해결을 가져오는 것임을 국민이 믿도록 해야 한다.

법이 제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를 위한 것임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법은 우리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니 우리가 지켜야 한다. 옛날 같으면 법이 간단하고 적을수록 좋은 통치라고 했으나 그것은 현대에 맞지 않다. 법은 현대 사회의 많은 갈등을 최후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분야별로 적절한 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가 제 기능을 해 줘야 한다. 좋은 법을 제때에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훌륭한 사람들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기존의 모든 법을 다시 돌아보아서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을 개정하고 새 시대에 맞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도 선진국이 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