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푸드투데이 창간 24주년 기획]K-푸드의 어제와 오늘...식품 현대사(1)아이스크림 1편

삼강하드, 아이스께끼 밖에 없던 시절 처음으로 현대적 시설에서 대량생산
투게더.부라보콘, 높은 우유함량으로 고급 아이스크림 시대 열어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은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흰 쌀밥은 사치였기에 보리밥이라도 배부르게 먹는 다면 감사한 하루였다. 미식에 대한 갈증보다 삼시세끼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게 먹던 것이 중요하던 시절, 이 시기의 식품 기업가들은 먼 미래를 내다봤다. 선진국의 식문화와 맛에 대한 기호, 그리고 기술력을 확장하고 시행착오를 거친 불굴의 의지로 진통을 겪고 제품을 내놓았다. 


2026년 현재 한국의 집밥, 외식문화, 프랜차이즈등 모든 카테고리를 통합해서 K-푸드라는 명칭이 붙었다. K-푸드의 일등공신은 단연 ‘가공식품’이다. 위생적인 공정을 거치고 획일화된 맛, 그리고 보존성을 보장하는 가공식품은 한국의 식탁을 평정한 것은 물론 지구를 몇 바퀴씩 돌고 있다. 

 
한국음식은 머지않아 K-푸드라는 무언가를 분류하는 명칭대신 ‘햄버거’와 ‘피자’처럼 단일 메뉴를 말했을 때 음식에 대한 단상이 먼저, 그리고  한국이 연상될 만큼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메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의 맛의 시작은 초라했다. <편집자 주>

20만 전자 된 ‘삼성’...삼강하드를 팔던 이병철의 형 이병각
삼강하드. 1962년 아이스께끼를 현대적 시설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됐다. 삼강하드를 생산하던 삼강유지공업의 사장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친형인 이병각씨였다. 이병각과 이병철은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 1958년 이병각은 성인이 되어 마산에서 무학양조장과 일동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일동산업은 2년 후 사명을 바꾸고 역작을 만들어낸다.  


1960년대에 들어 낙농업 진흥정책으로 우유 생산이 크게 늘자 아이스크림은 우유 소비책의 일환이 되었다. 삼강이 만든 딱딱한 아이스크림 제품을 일컫는 다는 뜻에서 ‘삼강하드’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지금까지 중장년층이 막대형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제품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삼강하드의 판매가격은 5원. 사카린을 탄 아이스께끼를 먹던 소비자들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우유맛 아이스바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롯데웰푸드가 되어버린 삼강의 초석을 삼강하드가 만들었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2005년과 2015년 두 차례 한정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6년 일동산업에서 삼강유지공업으로 순조롭게 사업을 이어가던 이병각은 뜻하지 않게 국보급 문화재 장물취득으로 기소되면서 경영권을 잃고 우여곡절 끝에 롯데제과에 인수돼 롯데삼강으로 거듭났다. 


롯데 삼강은 빙과시장의 강자였다. 1981년 출시된 빠삐코, 빵빠레, 돼지바 등과 함께 회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1983년 돼지해에 태어난 국내 최초의 크런치바 돼지바는 출시 당시 국내 빙과 시장에는 잼이나 과자를 조합한 아이스크림이 없었는데, 돼지바란 이름처럼 풍성한 맛을 살리기 위해 덴마크에서 ‘리아첸’ 기계를 들여오는 등 연구개발(R&D)에 큰 힘을 기울였다. 리아첸 기계 도입은 초콜릿 코팅과 크런치 과자로 달콤함과 바삭한 식감을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롯데삼강은 이후 롯데삼강은 롯데제과와 합병이 되고 롯데웰푸드라는 종합식품회사로 거듭나 빙과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세하게된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스크림 회사의 비밀
경쟁사의 회장님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마다 찾았다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지목된 제품이 빙그레의 ‘투게더’였다.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열광을 한걸까. 빙그레의 전신은 대일유업이다. 1967년에 설립되어 월남에 진출해 미군부대를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납품 중이던 대일유업 주식회사는 남양주군 일대에 젖소가 많다는 사실에 착안하고 미금면 도농리(지금의 빙그레 남양주공장)에 유제품 가공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대일유업은 이후 1982년 ‘빙그레’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1995년 계열 분리 후 지금의 빙그레가 되었다. 1974년 투게더의 출시는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시장에 정통 아이스크림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1972년도부터 당시 유가공 제조업을 하고 있던 빙그레는 분유가 아닌 생우유를 원료로 사용하여 미국의 아이스크림을 능가하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자 했다. 기껏해야 아이스밀크 정도나 겨우 흉내낼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투게더라는 제품명은 사내 공모를 통해 채택한 이름으로 ‘온 국민이 함께, 온 가족이 함께 정통 아이스크림을 즐기자’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당시 시중에서 판매되는 이른바 ‘10원짜리 께끼’에 익숙해 있던 일반 국민들 사이에 600원(900cc기준 당시 소매가)짜리 최초의 국산 고급아이스크림을 선보인 것이다. 당시로서는 아버지 월급날 같은 특별한 날에 온 가족이 모여 투게더를 함께 먹었을 정도로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다. 투게더는 이때부터 가족, 아빠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되었다. 당시 투게더 TV광고도 큰 인기였는데 지금도 당시 CM송과 가사를 기억하는 소비자가 많다.

빙그레 관계자는 “투게더는 먹거리가 귀했던 1970년대 국내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게 한 대표 아이스크림이다”며 “당시 투게더가 출시되고 나서 대리점 차량들이 투게더 제품을 먼저 받기 위해 공장 앞에 길게 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빙그레는 유제품에 강하다는 강점을 살려 메로나, 누가바, 뽕따, 비비빅, 더위사냥, 뽕따 등 공전의 히트작을 내놓게 된다. 해태와의 합병으로 인해 부라보콘의 영광도 빙그레가 흡수하게 됐다. 


부라보콘은 1970년 4월 출시됐다. 부라보콘이 출시되기 전, 당시 국내에는 막대에 얼음을 꽂은 아이스케키 형태의 아이스크림만이 판매되고 있었다. 1968년 부라보콘의 개발팀 일원이었던 진홍승 박사는 아이스크림 제작을 위해 유럽 낙농 선진국으로 건너가 덴마크 호이어사로부터 아이스크림 생산설비를 도입했다. 이후 약 2년 간의 연구 끝에 국내 순수 기술로 유제품이 들어간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 

부라보콘 출시 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부라보콘의 인기는 뜨거웠다. 공장 출입문을 봉쇄했을 정도로 상경한 도매상들로 공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와 같은 인기에 출시 후 국민이 먹은 부라보콘을 모두 한 줄로 연결하면 지구 26바퀴 이상을 돌 수 있는 양이라고 알려진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