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도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필자도 몇 년 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엿 본 아내가 나한테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죽을 자격도 없다”고. 순간 “뭐, 이런 여편네가 다 있나”라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옳았다. 내가 힘들다고, 내가 더 이상 물러설 땅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스스로 목숨마저 버리는 짓은 또 다른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최근 성매매금지특별법으로 삶의 기반을 빼앗긴 집창촌 여성들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집창촌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몸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생존을 위해 몸을 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IMF때 불의의 경제적 어려움을 당한 나는 낮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밤에 남는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생활정보지에 ‘밤에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는 광고를 냈다.
이를 보고 낙원동이라며 연락이 왔다. 호모족을 상대로 몸을 파는 일자리를 알선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하루 저녁에 50만원을 벌 수 있다”며 “하지만 몸은 다 망가질 거다”라고 말했다. 나는 1분도 고민하지 않고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죽으려고까지 마음을 먹었던 사람이, 그러나 죽을 자격이 없어서 살아가는 입장에 몸이 망가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고서는 그 후로 연락이 오지 않아 ‘미수’로 끝났지만 그런 일을 경험한 나로서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팔아서 먹고 산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팔고, 어떤 이는 기술을 팔고, 또 어떤 이는 몸을 팔아서 먹고 산다.
사회 통념적인 잣대로 보면 귀천이 있을 수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잣대로 보면 귀천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살기 위한 몸부림에는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구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그들이 애처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데는 본인들의 잘못이나 책임이 크지만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그 일을 못하게 하면 그들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사회 악’을 만들어 결국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부담으로 되돌아오게 만들 것이다.
고스톱을 칠 때 세 명이 치는 것과 네 명이나 다섯 명이 칠 때는 경우가 다르다. 세 명이 칠 때는 패가 잘 들어오든 못 들어오든 무조건 쳐야 한다. 어느 누구도 죽을 자격이 없다.
한마디로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 명이나 다섯 명이 칠 때는 광을 파는 사람도 나오고 ‘죽는 사람’도 나온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세 명이 치는 고스톱 판에서 죽을 자격도 없이 목숨 걸고 쳐야 하는 사람들처럼 생존을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음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일, 그것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다. 그래야 음지에 있는 사람들도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을 갖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