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학교에서 주는 옥수수빵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무상으로 제공되는 ‘제빵급식’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해주는 ‘원조성 급식’의 차원을 넘어 학교에 가는 즐거움까지 더해 주었다. 1953년 캐나다 정부가 원조한 분유를 결식아동들에게 제공하면서 시작된 학교급식은 1981년 학교급식법 제정을 계기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전국 1만509개 초·중·고 및 특수학교 가운데 98.4%인 1만509개교가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수로는 7백81만6천명 중 90%인 7백3만5천명이 매일 한 끼를 학교급식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있다. 60만대군의 10배가 넘는 미래의 국가 주 |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학교급식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 7월말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식중독 사고만 해도 142건에 환자수는 1만7천795명이나 된다.
원인도 밝혀지지 않는 식중독 사고가 해마다 되풀이 되고 있는데도 급식 관련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그뿐인가. 급식의 질적 수준은 더욱 문제다. 낮은 급식단가로 인해 급식재료의 대부분을 저질 또는 수입산을 사용하다 보니 맛이 있을 수가 없다.
필자도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 셋을 두고 있지만 하나같이 학교급식이 맛이 없다는 평이다. 설마 내 자식들만 맛이 없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급식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안타깝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의 주장만 내놓을 뿐 진정 수급대상자인 아이들을 생각하는 철학을 가진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학교급식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없이 급식의 강제 직영과 우리농산물 사용 의무화 등 비현실적인 법 개정만 추진하고 있고, 위탁운영 업체들은 그동안의 급식발전에 대한 공로(?)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주무부처인 교육당국은 더욱 한심하다.
각 지방 교육청에서는 민선 교육감들이 학교급식에 대한 철학도 없이 선거를 의식한 여론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실정이다. 학교급식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의 역할과 기능은 그야말로 무책임, 무능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7백만명의 학생들이 의존하고 있는 학교급식을 다루는 직원이 2~3명에 불과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학교급식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도시락 사주는 엄마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일은 더욱 아니다. 교육당국은 학교급식이 교육과정의 하나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성장기 학생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심신의 건전한 발달을 유도하고 편식교정 및 식습관의 올바른 자세와 협동, 질서, 공동체 의식 등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덕성을 함양하며 국민의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육당국이 목표로 하는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급 대상자들인 아이들이 급식을 맛있게 즐겨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최소한도 집에서 먹는 만큼은 돼야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즐기게 될 것이다.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맛도 없는 급식을 억지로 남김없이 다 먹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에겐 또 다른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또 위생관리도 제대로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식중독 사고를 내면서 아이들에게 교육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이 납품업체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구속되는 걸 목격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효과를 기대하는가.
학교급식을 제공받는 학생수는 60만대군의 10배가 넘는 700만명이나 되고 그 기간도 무려 12년이나 된다. 그 어떤 일보다도 가볍게 다뤄질 문제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위정자나 교육당국, 그리고 학부모, 관련 업체들이 모두가 학교급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철학을 가져주길 간곡히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