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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열풍..쌀 농가 희색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박병균(57)씨는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3년전만 해도 벼를 40㎏당 5만2000원 받고 농협에 팔았지만 지금은 4만1000원밖에 받지 못한다.

하지만 박씨는 올 초 뜻밖의 '희망'을 갖게 됐다.

포천시 막걸리협동조합과 막걸리 원료로 사용할 쌀 재배 계약을 맺으면서 비교적 괜찮은 가격에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경기도에서 다수확 벼 품종인 '드래찬' 종자 45㎏을 지원받아 논 8만㎡에 심었다. 올 가을 수확하면 도정을 마친 쌀 한 가마(80㎏)를 13만5000원에 팔 수 있다.

한 가마에 14만~15만원인 일반 품종보다 다소 낮은 가격이지만, 다수확 품종이라 쌀 생산량이 일반 품종보다 20~25% 가량 많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특히 박씨는 "올해 수확이 잘돼서 내년부터 점차 면적을 넓히면 포천시 농민들은 쌀 파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며 기대에 차 있다.

올해 포천시에서 막걸리협동조합과 재배 계약을 맺은 농가는 박씨 집을 포함해 3곳. 포천시는 이들 농가에서 다수확 품종을 시험재배한 뒤 그 결과에 따라 내년에 재배 계약 농가를 점차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2015년부터는 포천시 전체 쌀 수확량의 무려 30~40%에 해당하는 연간 7000여t의 쌀을 막걸리 가공용으로 공급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막걸리 제조업체는 질 좋은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막걸리 열풍으로 가격 폭락에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쌀의 새로운 수요처가 생긴 셈이다.


◇막걸리 고급화..국산쌀 사용 증가
우리 국민의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2002년 415만t(1인당 87㎏)에서 2007년 379t(76.9㎏)으로 5년 새 11.6%가 줄었다.

정부는 수급 안정을 위해 쌀음료와 쌀국수, 쌀과자 등 쌀 가공식품을 활성화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몇년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막걸리 산업에서 신규 수요를 창출하려는 움직임은 특히 주목된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막걸리 출고량은 2001년 13만8000㎘에서 2009년 24만7000㎘으로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올해 출고량은 40만㎘, 2012년은 58만8000㎘로 예상되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전망이다.

시장규모도 2008년 3000억원에서 2009년 4200억원으로 커졌는데, 이같은 추세라면 2012년에는 1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막걸리 산업 규모 확대가 곧 국산쌀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국산쌀의 막걸리 원료 사용량이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된 막걸리 원료(4만3849t)를 보면 수입밀 58.4%, 수입쌀 23.8%, 국산쌀 13.6%로 국산쌀 비중이 가장 낮다.

수입밀이나 수입쌀의 단가가 국산쌀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앞으로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막걸리 제조업체와 전문가들은 막걸리 품질 고급화 전략과 원산지 표시제 실시 등으로 국내산 쌀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포천의 막걸리 제조업체인 조술당은 7월말부터 생산하는 캔막걸리의 원료를 100% 국내산 쌀로 충당할 예정이다. 날이 갈수록 고급화되는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조술당의 김태환 전무는 "예전에는 막걸리가 서민주라는 인식이 강해서 업체들이 단가를 무조건 싸게 하려고 했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품질만 좋다면 가격을 많이 안 따지는 추세"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또 7월부터 막걸리, 소주, 맥주 등 술의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된 것도 국산쌀 사용이 증가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국립농업과학원 정석태 연구관은 "막걸리가 대중화되면서 업체들이 제품의 질을 높이려는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라며 "수입쌀은 수확 후 들어오는데 최소 1년 이상 걸리지만 우리쌀로 하면 햅쌀로 만들 수 있으니 질적인 차이가 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관은 "자발적으로 농가들과 계약 재배를 해 쌀을 공급받는 업체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명품 막걸리' 경쟁..국산쌀 원료 비중↑
농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쌀농사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막걸리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이동막걸리로 유명한 경기도 포천시는 2019년까지 1천200여억원을 들여 전통술산업특구를 지정, 전통술 산업과 농업, 관광산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포천에는 막걸리 제조업체 8곳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업체의 지난해 막걸리 생산량은 2만6860여t에 이른다.

이인선 시 농산유통팀장은 "기존 수입쌀 막걸리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업체들이 공동출자해 포천쌀만 사용하는 막걸리 생산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쌀을 확보하기 위해 계약재배가 늘어나면 농민들 수입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또 경기도는 막걸리 명품화와 세계화를 위해 막걸리 품질 인증을 추진하고 막걸리 제조업체의 공동 마케팅과 공동 물류시스템을 추진한다.

여기다 막걸리 포장 용기와 잔 등의 디자인을 개발해 업체에 보급하고, 경기명주 선발대회 등도 개최하기로 했다.

전남도는 일반 쌀막걸리와의 차별화를 위해 햅쌀로만 막걸리를 제조하는 것을 업체들에 권장하고 있다.

햅쌀은 수입쌀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맛이 신선하고 산뜻하며 숙취성분인 퓨젤유와 메탄올이 줄어들어 기존 막걸리보다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전남에서 햅쌀 막걸리를 제조하는 곳은 순천 주조공사 등 5곳으로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햅쌀 21t을 사용해 1억3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강원도는 농가들이 국세청으로부터 탁주제조 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추천장을 써주고 있다. 앞으로는 막걸리 만들기 체험 행사나 시음회를 열어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농림부는 농가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막걸리 가공에 적합한 벼 품종을 연구중이다. 또 영세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국산쌀을 원료로 쓸 때 필요한 자금 융자와 시설 개선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농림부 전한영 식품산업진흥과장은 "막걸리 산업이 커지면 국산쌀 사용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날테지만, 지원 정책을 통해 국산쌀이 원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