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식용이나 약용으로 식물을 이용해왔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만이 작용했을까 아니면 식물의 의지도 작용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식물에 의지가 있을 리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식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저술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이클 폴란은 "늘 욕망의 객체로만 생각했던 정원의 식물들이 사실은 나를 이용해서 자기들이 직접 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대신 수행하게 만드는 주체"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 종이 품고 있는 의도와 욕망의 객체가 될 수도 있고, 다윈의 정원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꿀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저서 '욕망하는 식물'에서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 등 네 가지 식물이 인간을 만나면서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식물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네 가지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을 통해 인간의 네 가지 욕망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과일)를 통해서는 달콤함을, 튤립(꽃)으로는 아름다움을, 대마초(마약)로는 황홀함을, 감자(식량)를 통해서는 지배력을 각각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에서 사과가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에 열린 과일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설탕이 미국에 풍부해진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미국 사람들은 단맛에 대한 갈증을 사과로 채웠다. 사과로 술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렇듯 금단의 열매에서 술에 이르기까지 사과는 인간의 달콤함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튤립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다는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튤립은 비싼 가격과 이국적 풍모로 과시욕을 부추기기도 했다.
저자는 튤립의 밝고 풍부한 색깔이 번식을 위한 전략이었으며, 어떤 꽃이든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미적 기준에 자신을 맞춰야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마초는 인간의 뇌에 화학작용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보다 복잡한 또 다른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도취의 식물'이다.
미국의 히피들이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에서 수백 년 동안 재배됐던 대마초로, 서리를 잘 견디는 강인한 품종을 구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대마초 유전자는 본격적으로 개량의 길을 걷게 됐다.
대마초는 인간의 욕망을 확실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증명해서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를 재배하도록 유도했다.
감자는 지배의 욕망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살충 성분을 생성하는 대기업의 감자 신품종을 정원에 심은 저자는 씨앗을 지배하려는 꿈, 씨앗을 통해 농부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엿보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식물과 인간은 한 배를 탄 공동 운동체임을 강조했다.
황소자리 펴냄 / 마이클 폴란 지음 / 이경식 옮김 / 396쪽 / 1만4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