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국 뉴저지에서는 식물상태로 의식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인공호흡기 없이 생존할 수 없는 퀸란이라는 소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주기 위해 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의사가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부모는 생명유지장치의 제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는데 뉴저지 고등법원에서는 부모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주 대법원은 부모의 청구를 인정하여 안락사를 사실상 허용하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다. 한편으로 미국의 안락사 옹호자인 케보키언 박사는 불치병 환자들 백여명의 자살을 도와주는 “자살장치”를 만들어 환자스스로가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누르게 하거나, 의사가 주사를 놓아주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하여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993년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오다가 2001년 4월에, 벨기에는 2002년 9월에 합법화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준주(州) 다윈에서는 1996년 조건부로 허용법안을 마련하였다. 미국 오리건주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콜롬비아·스위스에서는 묵인하고 있다.
안락사에 대하여 사기가 확실히 절박하고, 심한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죽음 이외에는 그 고통을 제거할 방법이 없으며, 당사자 본인의 참뜻에 의한 동의가 있고, 방법이 적절할 것을 조건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당사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자살관여죄를 처벌하는 현행 형법상 모순된다고 생각되며, 환자의 추정되는 고통과 가족들의 심리적 물질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인 안락사가 문제된 경우는 없으나 얼마전 대법원에서 이른바 소생가능 중환자의 치료중단에 관하여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의 책임을 인정한 형사판결이 선고되었다.
이 사건은 7년여 간의 법정공방을 통하여 뇌수술후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를 보호자의 동의하에 담당 의료진이 퇴원조치 시키고 인공호흡장치를 거두자 이후 환자가 사망한 경우 의사에게 그 사망에 대한 형법적 책임이 있는가에 대하여 의료계를 비롯하여 우리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환자의 부인의 요구에 의해 퇴원을 시킨 주치의 의사에게 환자를 퇴원시키면 보호자가 보호 의무를 저버려 피해자를 사망케 할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은 있었고, 환자를 집으로 후송하고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는 등 살인행위를 도운 점이 인정되므로 살인방조범으로 인정하여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중요한 쟁점은 의식이 없는 환자의 생명도 보호해야 할 환자의 권리이고 이를 보호할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형집행이나 교전 시 등의 극도의 예외적 상황이 아닌 이상 아무도 타인의 생명권을 처분할 자유는 없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식이 없는 중환자의 경우라도 그 생명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이러한 보호 의무는 환자의 처뿐만 아니라 의료계약을 통하여 환자를 치료하게 된 의사도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누구라도 의사에게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이러한 판단의 당위성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즉, 환자가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등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생명유지 장치를 통하여야만 근근이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막상 환자의 가족에게는 치료비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하나의 생명이 우주보다 값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의식불명 환자한명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나머지 살아있는 가족들의 생존이 위협된다면 이러한 경우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법원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의사는 비록 치료비를 받지 못하더라도 환자의 치료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고, 만약 환자 보호자의 퇴원요구에 동의하여 치료를 포기할 경우 형법상 살인방조범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의사로서는 살인방조범이 되지 않기 위해 치료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치료비를 낼 수 없는 보호자들을 대신해 자신이 치료비를 부담하면서 환자를 계속 무작정 치료해줄 수도 없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도 현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본다. 치료비 부담문제나 환자의 안락사 기타 이유로 가족들은 퇴원을 요구하고 의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중환자실 딜레마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환자실의 딜레마로 인하여 가족들과 의사들이 더 이상 살인범으로 몰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현재 응급의료에관한법률에 의하여 응급환자의 경우 의료기관의 미수금 의료비를 국가가 지불해주는 제도가 있으나 이는 기금의 부족과 그 요건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사실상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로 소생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는 치료비 부담능력을 불문하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이 확인된 이상 국가는 이러한 중환자실의 치료비 부담문제를 단지 환자와 의사들이 알아서 처리해라는 식으로 방기하여서는 안 된다. 치료는 필요하나 자력이 없는 중환자실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에 관한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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