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바벨”에 보면 불법이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집의 유모는 멕시코인으로 16년째 미국에서 살면서 주인집 아이들 둘을 돌봐온 사람이다. 평온하던 그녀의 생활이 외국여행을 떠난 주인 부부가 사고가 생겨 제날짜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미국으로 올때, 그 유모는 멕시코에 아들을 하나 두고 왔는데 그 아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되고 그 날짜에 주인 부부가 못 돌아오게 된 것이다.
달리 아이들을 맡길 데도 없어서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서 아들 결혼식에 가게 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붙잡히고 만다. 미국에 16년이나 살았으며 미국에 모든 생활 기반이 있고 아이들도 태어날 때부터 돌봐왔다고 사정 사정해도 경찰관은 전혀 그런 것을 참작해 주지 않는다.
결국 유모가 미국 영화에 많이 나오는 대로 “그럼 변호사하고 얘기 하겠다”라고 하자 미 관리는 “그러면 당신은 짐짝처럼 끌려서 수용소로 가게 되고 만일 강제 추방을 지금 받아 들이면 사람 대우 받으며 차에 태워서 멕시코로 보내진다”고 했다. 마음 착한 그 유모는 멕시코로의 추방을 택하게 되고 그 순간 16년간의 아메리칸 드림은 물거품으로 변하게 된다.
수용소가 얼마나 두려웠길래 그렇게 말했을까.
우리가 지금은 제법 살게 되니까 거의 없어졌지만 우리도 한 때 훨씬 잘 사는 이웃인 일본으로 밀항하여 불법 입국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오무라’에 수용소가 있었는데 언젠가 그 곳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의 한이 담긴 수용소 내부 벽에 써 갈긴 낙서가 보도되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네팔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 올 때 카트만두 시내의 호텔에서 아주 잘 생긴 네팔 청년을 만났던 적이 있다. 그는 그 호텔의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면서 한국으로 갈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면 그 곳에서 일하는 것 보다 몇 배의 돈을 벌 수 있고 나중에 고향에 가게를 내서 독립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언제쯤 가게 되느냐고 물으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청년처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편법으로 입국하고 결국 불법 취업에 출입국법 위반자가 된다.
사실 우리 주위의 인력 공급 사정을 보면 이들의 노동력 없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타격을 입을 우려도 있다. 이미 생산기업의 공장근로자와 식당 사업의 홀 서빙 인력은 외국 국적 가진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덕분에 그나마 식당에서 한끼를 4~5,000원 이란 가격에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여수 불법체류 외국인 수용소의 화재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난 참사라서 더 부끄럽다. 자기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일을 하려 한 사람이면 보통사람보다 용기가 큰 사람이거나 사정이 절박한 사람일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불법 체류자가 되어 감금되었던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명 된 세상이라 해도 이들 불법 이민 자들의 사정을 잘 헤아려서 인권을 보호해 주는 장치는 대부분의 잘 산다는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사람들이 잘못해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의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재발을 방지 하느냐이다. 재발을 방지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정부에서 잘 마련해 놓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보상을 국가에서 해 줄 경우에 뜻하지 않은 폐해가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보상해 주면 거의 확실한 종신 보험 같이 될 우려가 있다. 자기나라에서 평생 벌어도 못 버는 돈을 만일 한국의 수용소에서 사고로 생명을 잃게 되면 확실하게 큰 돈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결국 이번 일은 책임을 철저히 가리되 보상은 우리 국민들이 성금으로 해결하면 좋겠다. 희생자들의 유족과 그 나라 국민들에게 사죄의 뜻도 되고 국가가 보상해 주는 것의 문제점을 해결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 국민과 우리 나라보다 지금은 우리보다 덜 운이 좋았던 국민들과의 유대를 깊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