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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스캔 못 하면 굶어야 하나?”…지갑도 메뉴판도 사라진 상하이 식탁

‘QR 사회’ 넘어 ‘데이터 사회’로 진입한 중국 외식업 현장
알리페이·위챗페이 기반 주문·결제 통합 생태계 구축
주문은 고객 ‘셀프 노동’으로, 직원은 조리·물류 중심 역할로 재편
고령 여행객 언어·디지털 격차 ‘이중 장벽’…효율 이면 포용성 과제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지난 주말 늦은 밤, 중국 경제의 심장부 상하이 난징동루의 한 로컬 식당. 한국어는커녕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기자가 마주한 것은 친절한 종업원의 인사 대신 테이블 구석에 붙은 QR코드였다.

 

당황함에 어색한 눈빚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짧은 손짓 하나였다.

"스캔하세요(扫描)."

 

그 순간 실감했다. 2026년 현재, 중국 외식업계는 이미 'QR 사화'를 넘어 인간의 소통이 데이터로 대체된 ‘데이터 사회’로 완전히 진입했음을 말이다.

 

 

'지갑=폰'...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

 

중국은 이제 '현금 없는 나라'를 넘어 '지갑 자체가 필요 없는 나라'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사실상 생존을 위한 생활 인프라다. 길거리 꼬치 하나를 사도 QR을 내민다. 체감상 거의 모든 결제가 모바일로 이뤄지며, 지갑을 꺼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중국 컨설팅 업계에 따르면 2012년 모바일 결제 비중은 4%에 불과했지만, 2017년 78.5%로 급증한 뒤 현재는 90%를 상회한다. 유독 중국에서 QR 기반 결제가 급속 확산된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신용카드 인프라가 충분히 자리 잡기 전, 은행 지점과 ATM 수 부족, 은행 간 거래 불편이 이어지면서 계좌 기반 핀테크 결제가 빠르게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메뉴판은 사라졌다...스캔이 곧 입장권

 

한국인 방문객이 많은 난징동루와 신천지 일대 식당에서도 종이 메뉴판은 자취를 감췄다. 테이블 번호 옆에 붙은 QR 스티커가 사실상 유일한 주문 창구였다.

 

알리페이로 QR을 스캔하자 웹 기반 메뉴가 즉시 열렸다. 테이블 번호와 인원 수를 입력하면 메뉴 사진과 가격, 자동 번역 설명이 화면에 뜬다. 주문과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채 2분이 되지 않았다. 일부 매장은 ‘물 추가’, ‘그릇 요청’ 등 세부 서비스까지 앱에서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다만 중국 현지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여러 앱은 가입 단계에서 광고·마케팅 메시지 수신 동의를 요구한다. 이를 수락하면 각종 프로모션 알림이 빈번하게 발송돼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

 

 

카페는 물류 허브...줄 서기가 사라진 풍경

 

상하이의 유명 밀크티 브랜드 '패왕차희(CHAGEE)' 매장도 풍경은 다르지 않다. 입구에 QR코드가 손님을 맞이하고, 직원들은 기계처럼 음료 제조에만 매몰돼 있다.

 

손님은 QR을 스캔하고 결제한 뒤 자신의 주문 번호가 호출될 때까지 스마트폰만 응시한다. 직원과 눈을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배달기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매장은 오프라인 공간이라기보다 디지털 물류 허브에 가까웠다. 주문 행위는 ‘서비스를 받는 과정’이 아니라 ‘고객의 셀프 노동’으로 이동했다.

 

고령층 여행객에겐 ‘이중의 장벽'...기술이 만든 소외

 

하지만 이 효율적인 시스템은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절벽이다. 식당에서 만난 옆 테이블의 중년 부부는 한참 QR코드를 바라보다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앱은 설치돼 있었지만 결제 연동이 서툴렸고,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상하이의 QR 시스템은 젊은 세대에게는 편리하지만 고령 여행객에게는 '언어'와 '디지털'이라는 이중의 허들을 제시한다.

 

메뉴판이 없는 구조에서는 스캔하지 않으면 음식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 앱 설치, 인증, 카드 연동 등 복합 절차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부담이다.

 

과거에는 사진을 가리키거나 손짓으로 주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연결’되지 않으면 소비 자체가 불가능하다. 효율이 포용성을 잡아삼킨 현장이다.

 

“QR을 넘어 데이터 사회”…포용성은 과제

 

상하이 외식업의 QR 시스템은 주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축적한다. 시간대별 판매 분석과 재고 관리, 인력 배치까지 연결된다. 직원 역할은 계산에서 조리·위생·동선 관리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 시스템은 업주 입장에서는 혁명적인 효율을 선사한다. 주문 오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인건비를 절감하며, 고객 행동 데이터는 자산이 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식당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메뉴를 묻고 추천을 받던 짧은 대화, 계산대에서 오가던 눈인사는 데이터 전송 속도에 밀려 사라졌다.

 

한국이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로 간편결제 시장을 넓히고 있다면 중국은 이미 결제를 넘어 주문, 멤버십 관리, 서비스 요청까지 하나의 데이터 생태계로 통합했다. 줄을 서지 않는 편리함과 소통이 사라진 삭막함. 상하이의 식탁은 우리에게 디지털 혁신의 미래와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동시에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