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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충우 칼럼] 요강을 뒤엎다는 복분자주

신충우
BT&IT 칼럼니스트
지난주말 가족들과 전북 순창을 다녀왔다. 순창은 고창과 더불어 복분자 집산지이며 그 중에서도 쌍치면은 단일 면으로는 전국 최대 생산지이다. 올해 쌍치복분자 작목반 연합회는 복분자 900톤(수매가 6천300원 기준, 56억7천만원어치)을 수매할 계획이였으나, 날씨로 인해 그 절반인 450톤밖에 수매하지 못했다. 열매가 맺힐 무렵 가물고, 수확기에 비가 자주 내려 작황이 나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복분자를 필요로 하는 가공업체들사이에 난리가 났다. 1년에 딱 한철(6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수확되는 복분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1년 장사는 고사하고 회사가 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공업체들이 군수에게 연줄을 대고, 작목반을 찾아와 복분자를 달라고 떼를 쓰는 등 뉴스거리가 많았다.

포도나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와인(wine)을 대체할 복분자주의 주원료 복분자는 현재 프랑스 포도보다 10배나 수매가가 높으며 즙도 포도에 비해 덜 나온다. 이래 저래 포도보다 생산원가가 많이 들다 보니 순수 복분자 와인을 만들어 내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어째든 현재 주류 시장의 신데렐라는 복분자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고창 명산품 복분자주가 처음 상품화된 뒤 복분자주 제조 면허업체는 30여군데로 늘어났고, 제품 출시업체도 20군데나 된다. 이와함께 대형주류회사인 보해와 민속주업체의 선두주자인 전주 이강주도 복분자주를 내놓고 있다.

복분자주가 단기간내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복분자(覆盆子)는 한자로 엎을 복(覆), 동이 분(盆)이다. 동이는 물동이 같은 용기인데, 여기서는 요강을 뜻한다. 복분자를 먹고 나면 오줌줄기가 세져 요강을 뒤집어 엎을 정도로 정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분자주는 비아그라식의 말초적인 술은 아니다. 뿌리가 깊고, 저력이 있다. 1995년 상품화되기 전부터 전북 선운산 일대의 음식점에서 내놓던 밀주로 과거부터 전라도지역에서 선호되던 민속주였다.

현재 면허가 난 30여개의 복분자주들은 거의 비슷한 제조방법을 택하고 있다. 주정(酒精· 희석식 소주의 원재료, 95%의 순수 에틸알코올)에다가 복분자를 그냥 넣거나, 복분자 발효 와인을 만들어 넣는 방식이다.

복분자주는 완성된 복분자 와인에 약주를 결합시킨 것이다. 이때 약주는 쌀로 고두밥을 지어 개량누룩과 섞어 빚은 전통 발효주이다. 쌀발효주와 복분자 와인을 결합시킨 뒤에 5일 동안 후발효를 시킨다. 이는 발효주끼리 살을 섞는 기간이다. 이렇게 되면 원가는 두배로 더 들지만, 술맛은 풍부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주정 복분자주는 주정의 센 맛이 술맛을 압도하는데 약주 복분자주에는 곡주의 부드러운 맛이 스며있다. 주정 복분자주가 단정하면서 야멸찬 맛이라면, 약주 복분자주는 휘어진 시골길을 걸어가는 듯한 맛이다.

복분자주는 이같은 특장점에 비추어 포도와인에 대항할 수 있는 훌륭한 한국 전통와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비싼 것이 흠인데 생산원가를 낮춘다면 가격경쟁력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퇴근길에 시원한 주점에 앉아 친구나 동료들과 복분자주의 맛과 향에 취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