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시론 ··· Understanding

김병조 편집국장
필자는 ‘미움’이라는 화두(話頭)를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살고, 또 남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직선적이고 모난 성격 탓에 유난히 미운 사람이 많았고, 동시에 본인에게도 적이 많았었다. 아직은 미완의 해탈(解脫)이지만 필자는 몇 년 전 나름대로 그 해법을 찾았다. 그 해법의 열쇠는 바로 ‘Understanding’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마음의 잣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자기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싫어하고 멸시하고 증오하는 게 아닐까.
한마디로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를 살아가는 처지가 다르고 앞을 내다보는 설계가 다르다. 그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컴퓨터와 다른 점이 뭔가. 컴퓨터는 입력 값(input)이 같으면 출력 값(output)이 같다. 그러나 인간은 같은 사물을 보고도 각기 다른 느낌을 뱉어 낸다. 인체의 두뇌구조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생각을 갖고 사물을 접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Understa nding’은 그래서 중요하다.

‘Underst anding’은 우리말로 ‘이해’다. 이해는 ‘Under’(아래에) ‘Standing’(서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 밑에 설 때, 즉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만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이 정한 기준이나 잣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줄 때만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로 평가한다.

우리사회에는 ‘상대적 가치’가 무시되고 있는 현상이 너무나 많다.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계층간의 갈등이 좋은 사례다. 신세대는 자기네들만의 잣대를 갖고 기성세대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기성세대 역시 자신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신세대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에 빠져있다. 이런 연유로 신세대는 부모님 세대에 대해 ‘엄마, 아빠는 뭘 몰라요’라는 식이고 부모님들은 자식 세대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 하는 식이다.

상대적 가치를 무시하는 현상은 기업이나 정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다.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회사 사장일수록 종업원들을 더욱 못살게 굴고 있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직원일수록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이 더 많다.

시류에 따라 또는 당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정치인을 매도하고 하루 아침에 정치생명을 끊어버리는 짓도 상대적 가치를 무시한 처사들이다.

필자는 이 세상에 자연의 섭리 외에는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가치는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흑백논리란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줄 아는 아량이 곧 이해를 낳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불어 둥실둥실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하는 행위, 즉 삶 자체는 진리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연습에 불과한 것이다. 누구나 그런 과정에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겠는가.

김병조 편집국장/bjkim@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