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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칼럼 - 사랑의 기쁨

첫 사랑은 대부분 짝사랑이 많다. 어느 한쪽에서 주는 사랑이 다른 쪽으로부터 받는 사랑보다 훨씬 클 때 짝사랑이 된다.

첫 사랑의 기억이 달콤하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비슷하게 상대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 뒤에 아무런 고통 없이 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운 좋게도 그 첫사랑과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 오는 생활의 무게가 첫 사랑의 기억을 덮어버릴 만큼 힘겹지 않았기에 달콤함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첫 사랑이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가 있다. 아직 육체를 모르는 때에 그만 첫 사랑이 짝사랑으로 되어버려 기대하던 반응이 없는 상대방 생각 때문에 절망에 빠지게 되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도 아프다.

문득 흘러가 버린 노래의 멜로디, 그리고 가수의 신음하는 듯한 가창력이 그 때 가졌던 마음을 꼬챙이로 파내듯이 속속들이 후비는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어김없이 코피 같이 고통의 기억이 한줄기 흘러 나온다.
 
이제 그 얼굴의 구석구석은 잘 생각 나지도 않지만 그 사람의 향기만으로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첫 사랑의 아픔은 어디인가에 분명히 남아 있다. 마치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다리의 발가락 사이 가려움같이, 미각이 변해버려 이제는 더 이상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맛있던 음식의 기억처럼 그렇게 첫 사랑은 영원히 아물지 않는 아픔이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순간에 달콤함이 아련히 남아 있는 처음사랑은 삶의 고통까지도 이겨내게 하는 불가사의한 마력이 있다. 요즈음 아이들도 그런 사랑들을 하고 지낼까. 아직도 첫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게 되는 비율이 많을까.
 
이제는 옛날보다 의사소통의 수단이 엄청나게 발달되어서 아마도 훨씬 빠르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우리처럼 대책 없는 짝사랑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보다 더 행복한 걸까?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우리 때보다 더 바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 같다. 장래를 위한 수능과 대입준비 때문이라고 한다. 한창 감수성이 높은 아름다운 나이에 그들을 책상 앞에만 붙들어 놓는다면 젊은 날의 사랑은 언제 시작하게 될까. 아예 젊은 날의 가슴 뛰는 기억 같은 것은 피어나기도 전에 메말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신문에 난 이야기이지만 요즘 소개팅을 할 때 남자가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 같은 기사를 읽었다. 하기는 결혼 후에 집을 마련하려면 감내해야 하는 경제 생활의 희생과 고통을 피하려는 젊은 세대의 생각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사회가 나서서 젊은 남녀가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찬스를 높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했으면 5년에서 10년 안에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착실한 로드맵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아파트 같이 물질적인 것을 사랑보다 우위로 두는 이상한 결혼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
 
첫 사랑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아름답다. 사랑 없이 평범한 삶이, 사랑이 있어 아프고 달콤한 삶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사랑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단지 우리 마음속에 씨앗처럼 숨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잘 찾아내어서 가꾸어 가야 한다. 모든 감정 중에서 기쁨과 보람이 가장 큰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악한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므로 모든 사랑은 선하다. 때로는 상처를 받을지 몰라도 우리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의 족쇄를 툭툭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