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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플래시 - 공공의료정책의 내실화

당장 아파도 당장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고민하는 절대 빈곤 계층이 의료 사각 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또 2백만 세대 이상이 생계 때문에 건강보험료조차 납부하지 못해 기본적인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빈곤층이 가장 질병이 많고 의료수요가 높은 층이라는 사실이다. 질병 때문에 빈곤하거나 또는 빈곤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환자를 리무진 승용차로 모시고 호텔 숙박까지 주선하는 수십에서 수백만원대의 초호화 건강검진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센터가 서울 강남에 성업하고 있다고 한다. 위화감을 부추긴다는 비난이 팽배하나 비용에 상관없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은 소비자들이 있는 이상 이러한 서비스를 공급하겠다고 나선 병원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념하에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을 공적 보험으로 운영하는 등 의료에 관한 한 전반적으로 공적의료체계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우리의 의료현황은 민간병원이 의료서비스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보건소나 의료원 등 공공의료시설은 아주 소수에 그쳐 민간부문이 의료체계의 뼈대를 이루고 공공부문이 보완하는 형태로 공적의료체계와는 거리가 먼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단지 공공의료기관들의 숫자가 적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기관을 찾는 환자들이 내실있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국의 공공의료기관들이 국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공공보건의료기관 의료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의사 중 공공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 비율은 9%이며 간호사는 8.5%, 그 밖의 의료인은 5.8%로 나타나 공공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인력의 비율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의사들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라든지 제때에 수술을 하지 못해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의료기기도 개인 병·의원에 비해 수준이 열악하니 환자들은 첨단시설과 우수한 의료진을 갖춘 개인 병·의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공공의료기관들은 이러한 의사부족, 환자 수 감소, 신규투자 부족 등의 악순환을 겪으며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어 급기야는 그중 일부 병원은 문을 닫는 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또한 국민들의 의료소비행태에서 보건소 등 공공의료 기관에서 진료한 건수는 동네의원까지 포함한 전체 의료기관 진료건수 중 아주 소수에 불과해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의 숫자뿐만 아니라 진료건수마저 빈약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말해준다.

공공의료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인력·시설·장비를 민간병원 수준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기관이 단순히 시장경제논리에 맞춰 돈벌이에 치중하다 보면 서민을 위한 공공의료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목적을 망각할 수 있으므로 경영안정화를 위해서는 공공병원 자체의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의 재정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공공병원은 단순히 수익성 있는 진료를 추구하기보다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하에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진료뿐 아니라 주민 의료서비스의 표준과 모범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는 등 핵심 서민의료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정책이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같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경제논리에만 맡겨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진 공적인 서비스로, 이러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합리적인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협중앙회 통상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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