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장군이 다시 수군 삼도통제사로 되돌아와서 처음 치룬 명량해전이 아니었을까. 장군은 1497년 4월에 조정의 강도 높은 심문을 받고 풀려난 뒤 권율장군 수하에서 백의종군하다가 그 해 8월 3일에 삼도 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게 된다. 그 때는 우리 수군이 원균의 지휘하에 칠천량 싸움에서 대패하여 군사들의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던 때이며 배도 모두 잃고 단지 13척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실제 해전이 벌어졌던 날에도 장수들이 탄 배는 모두 도망칠 궁리만 하여 장군은 엄한 군법을 내세워 우선 두 척을 불러 돌격전을 펼쳐야 했기 때문에 장군 자신도 승리를 믿기 어려웠던 싸움이었이다. 그 날 일기에 장군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고 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장군이 명량대첩의 승리 이전에 승리를 예고하는 두 번의 꿈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대첩이 있기 사흘전인 9월 13일 일기에 “임진년 크게 승리 했을 때의 꿈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고 또 한 번은 대첩이 있기 하루 전인 9월 15일 일기에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가르쳐 주었다”라고 기록한 것이다.
장군이 꿈에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따라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장군 자신이 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믿음이 있었음을 다른 날짜 일기에서도 알 수 있다. 장군이 삼도 통제사로 재임명 받기 전 날 일기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의 꿈을 꾸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아들 “면”의 전사 소식 편지가 전해진 날 새벽 꿈에 아들이 나타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명량대첩 직전의 좋은 꿈이 스스로 용기를 내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3전 23승으로 세계 해군사상 가장 존경받고 있는 장군도 계속 되는 전투 중에 때로는 점을 쳐 보기도 하고 때로는 꿈을 해석해 보면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을 달랬음을 보여준다.
마치 장군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인간적인 면모의 대목들이다.
장군은 전투마다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큰일을 앞둘 때의 우리처럼 좋은 꿈을 꾸기를 기대 했을까.
꿈에 대한 여러가지 깊은 연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은 신비하다. 기록에는 꿈을 통하여 어려운 난관을 해결해 나간 사례들이 많이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꿈에서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을 때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지극히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이순신 장군을 승리를 이끄는 길을 가르쳐 준 신인이 그들의 꿈에도 나타나 승리와 해결의 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그들의 일기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