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원산지 인증제 폐지 반대 1만2천건…“소비자 신뢰·알 권리 훼손”

소비자 “신뢰 마크 없애지 말라”…업계 “행정 부담 큰 제도 실효성 낮아”
정부 “표시제는 유지, 실적 없는 인증제만 폐지”…정치권도 논쟁 가세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정부가 원산지 인증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자 소비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다. 국민의 알 권리와 식품 신뢰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입법예고시스템에는 1만2천 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10일 오전 기준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는 정부가 지난 9월 26일 입법예고한 ‘식품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총 12,243건의 의견이 접수, 대부분이 반대 의견으로 나타났다.

 

의견 게시판에는 “국익에 해가 되는 악법”, “소비자 신뢰 저하”,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등의 반대 의견이 이어졌다. 일부는 “행정 편의성을 이유로 중국산 식품 유통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 아니냐”, “원산지 속임 가능성이 높아져 소비자 기만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원산지 인증제 폐지, 왜 논란인가

 

정부는 지난달 26일 ‘식품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14일까지 의견을 수렴 중이다.
개정안은 원산지 인증제의 대상에서 식품접객업소 및 집단급식소를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산지 인증제는 2015년 도입된 제도로, 음식점이나 가공식품 업체가 국산 원재료 사용 비율(95% 이상)을 충족하면 정부가 이를 인증해주는 제도다. 식자재의 원산지 투명성과 신뢰 확보를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인증 신청이 거의 없고 행정 부담만 크다”며 제도 폐지를 추진 중이다. 다만 학교·음식점 등에서 쌀, 김치, 쇠고기, 수산물 등 29개 품목의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한 ‘원산지 표시제’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증제 도입 이후 음식점·급식소 부문에서는 인증 신청이 단 한 건도 없었지만 김치·고춧가루·두부·장류 등 가공식품 부문에서는 32개 업체, 158개 품목이 인증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실적 없는 영역만 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제도 폐지가 ‘원산지 표시제’까지 없애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정부는 이번 개정이 인증제에만 한정된 조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폐지하는 것은 의무적인 ‘원산지 표시제’가 아니라 신청 실적이 거의 없던 ‘인증제’에 한정된다. 즉, 음식점과 급식소, 학교·병원 등은 여전히 원산지 표시판 부착 및 식자재 원산지 관리 의무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소비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인증 기능’을 없애도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로 모아지고 있다.

 

반대 측 “소비자 신뢰 약화·식품 안전 공백 초래”

 

반대 측은 인증제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보호 장치라고 강조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제한하고, 식품 안전·품질 관리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입법예고시스템에 게시된 반대 의견 다수는 “정부가 ‘현장 수요 부재’를 이유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식품 원산지 정보는 소비자의 건강권과 직결된 핵심 정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인증제가 유명무실했다면 폐지가 아니라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SNS를 통해 “식품 원산지 인증제가 사라지면 값싼 수입산이 급식 현장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실효성 문제를 이유로 폐지하기보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 “행정 부담 크고 실효성 낮아”…제도 개선 요구도

 

반면 업계에서는 “행정 절차에 비해 실익이 낮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인증 신청을 위해서는 영업신고 2년 이상, 원재료 95% 동일 원산지 유지, 기록관리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심사·갱신 등 행정비용이 부담된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제품 선택 시 인증 마크보다는 가격이나 브랜드 신뢰도, 유통 경로 등 현실적 요인을 더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 제도가 소비 행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도 폐지를 검토하더라도 소비자 보호 장치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원산지 인증제의 폐지가 불가피하더라도 소비자의 신뢰를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남겨야 한다”며 “공청회와 시범사업 등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 속에서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