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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故 정주영 회장과 급식문화

김병조 편집국장
요즘 단체급식 시장 상황을 보면서 문득 故 정주영 회장이 떠올랐다. 필자는 일선 기자시절에 고인을 1년 정도 밀착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고인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아는 편이다. 고인이 남긴 업적이나 후손들에게 물려준 교훈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 먹는 문제와 주거 문제에 대한 고인의 철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그룹 계열사 구내식당을 여러 번 이용해본 적이 있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구내식당에 비해서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급식의 내용이 정말 훌륭하다는 인상을 가진 바 있다. 직원들에게 물어본 결과 “회장님이 직원들 먹는 것만큼은 푸짐하게 잘 해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답을 받았다.
중소기업 시절부터 부인 변중석 여사가 직접 만든 된장, 김치 등을 가져와 직원들에게 가족처럼 대접했다는 일화도 알게 됐다. 현대그룹 계열사는 또 직원들의 주택문제를 거의 해결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조업체의 경우 대부분이 사원주택을 제공해 주거문제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왕회장’이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또는 직원들한테 그 정도 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현대그룹의 이 같은 문화는 故 정주영 회장의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가운데 단체급식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현대백화점 계열 급식업체인 현대 지-네트 직원에게도 고인의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져 있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그동안 주로 중소기업들이 맡아온 학교급식 영역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왜 현대는 학교급식 영업을 소홀히 하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을 받았다. 그는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한다는 것은 저단가 전략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선택적으로만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시장질서로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급식을 제공한다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현대가 위탁하는 학교의 급식단가가 다른데 비해 비싼 것도 아니다. 현대는 지금 8개의 학교급식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 5개는 대학이고 3개는 중고등학교다. 그런데 서울의 모 고등학교의 경우 급식비는 다른 회사와 비슷한 2,300원을 받으면서도 메뉴는 복수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급식현장에서 복수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남는 게 없는 장사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를 두고 故 정주영 회장의 ‘먹는 문제’와 ‘주거 문제’ 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요건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 등의 철학이 반영됐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 사무실에는 어디를 가든 이런 내용의 故 정주영 회장의 친필 휘호가 걸려있다. 학교급식 시장이 업체들 간의 과잉경쟁으로 난장판이 되고 있는 요즘, 고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철학을 갖고 담담한 자세로 정도를 걷고 있는 현대 지-네트 직원들의 영업 정신이 유난히 돋보인다.

현대 지-네트는 단체급식 시장에서 330개의 업장을 통해 연간 매출 1천8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업계 4위의 대기업이다. 그들도 기업의 생리상 많은 영업장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야 없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 생존의 최소한의 기본요건인 먹는 문제에 관한 한 ‘인심’을 써야 한다는 故 정주영 회장의 철학과 유지를 끝까지 받들어서 모름지기 단체급식 업계에서 귀감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