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누리던 오가피가 요즘에는 다소 소비자들의 손길에서 멀어진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업체들의 과도한 경쟁과 그것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정부의 소극적 행정이 빗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또다시 애꿎은 농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오가피 시장의 현황과 혼란의 원인을 살펴보기로 한다.
오가피의 효능
![]() | 오가피는 홍삼과 인삼의 뒤를 잇는 약초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예로부터 관절염, 신경통의 치료에 이용했으며 노인이 힘이 약할 때 복용한 기록들이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이 복용하고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연스레 찾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덕분에 오가피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게 됐고 오가피를 취급하는 업체도 우후죽순처럼 많아졌다. 원래 오가피는 경상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 지역 |
오가피 추출물에는 탄수화물과 지방질의 대사를 촉진하는 물질인 ‘아칸토싸이드D’가 함유돼 있다. 아칸토싸이드D는 알코올의 해독을 비롯해 식욕증진, 혈액순환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물질이다.
또 골수가 적혈구, 백혈구를 만드는 것을 조절해 면역력과 저항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면역시스템의 교란으로 생기는 알레르기성 질환을 개선하고 암절제술, 방사선 치료 등 암치료 후의 빠른 회복을 돕는 기능도 있다.
이처럼 오가피의 많은 효과 중에서 정통 약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현저하게 완화시켜 준다는 것 정도이다. 정신ㆍ육체적 집중력과 지구력이 향상되므로 운동선수나 수험생에게 이롭다는 설명이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오가피의 효능이 부풀려진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작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팀이 발표한 ‘영양치료와 건강기능식품 연구’에 따르면 오가피의 효능에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오가피도 인삼과 같이 많은 임상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효능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가피 시장의 현황과 문제점
오가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건강기능식품 관련 업체들은 너도나도 먼저 오가피 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제품 유형은 오가피의 진액을 추출해 차나 음료 형태로 가공한 액기스이다. 그 외에 화장품, 사탕, 술 등 다양한 유형의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오가피 시장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가 없다. 관련 업계는 업체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특히 판매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파악이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오가피 제품의 판매 방법이 다단계판매, 통신판매, 홈쇼핑, 방문판매, 전자상거래 등 거의 | ![]() |
관련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오가피 제조업체인 P사의 가시오가피 제품에 대해 오가피 농장업주인 S씨가 효능에 문제를 제기해 허위ㆍ과대광고로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업체들간에 오가피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가피 전쟁은 2002년 국내 최대 오가피농장을 소유한 S사가 자사의 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4개의 업체들의 제품에 대해 오가피의 지표성분인 ‘아칸토싸이드D’의 함유량을 비교하는 광고를 내면서 시장 전체로 확대됐다. 결국 S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고, 나머지 업체들은 영업에 타격을 받았다.
오가피 전쟁은 2003년에 오면서 2차전에 돌입한다. 역시 S사가 오가피 최대 판매업체인 K사의 제품에서 오가피 성분이 아닌 물질이 검출됐고 그 물질은 향가피라는 독성이 있는 식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K사를 법원에 고소하게 된다.
K사는 자신들의 제품에 들어가는 오가피는 국산과 북한산을 섞어서 사용하는데 국산은 문제될 것이 없고 북한산 역시 정상적인 수입절차에 따라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검사 결과 K사의 제품에서 오가피에 들어 있지 않은 물질이 감지됐으며 그것이 식품원료로 사용할 수 없는 향가피의 주성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K사는 품목제조정지 15일과 당해 제품의 회수 폐기 처분을 받았고 품목제조정지 대신 과징금 1050만원을 납부했다. 그 후 식약청의 권고에 따라 향가피로 의심이 되는 북한산 오가피를 사용하지 않고 100% 국내산 오가피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오가피의 분석방법이 국내에서는 고시된 게 없어 이번 분석결과가 꼭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오가피에 대한 국내 규정을 만들때까지는 생산을 중단해달라는 식약청의 요청이 있어 이를 수용한 것이지, 잘못이 있어 벌금을 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S사는 식약청의 처분에 불만족을 나타내며 사장인 S씨와 K사 제품을 복용했다는 소비자들 명의로 K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걸어놓은 상태이다.
이에 대해 K사 측은 “S사 측이 다단계 판매 실적이 부진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회사의 판매원들을 모집해 자신의 제품을 3개월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조건으로 교육을 시킨 후 피해사례와 서명을 받아 소송을 건 것”이라며 “그 사람들이 S사의 다단계 판매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S씨의 고소건에 대해 서울중앙검찰청은 올 3월 31일자로 증거불충분의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S씨는 여전히 K사의 제품을 포함한 타 업체의 오가피 제품이 부실하게 만들어 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K사는 시장 후발 업체가 시장 확보를 위해 네거티브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
일각에서는 오가피 시장의 혼란이 정부의 몸사리기식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오가피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 보다는 눈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해 왔다.
오가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판매가 되고 있는데도 오가피를 규제할 수 있는 지표성분마저 정하지 않고 있다가 그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자 그제야 ‘아칸토싸이드D’를 지표성분으로 정했다.
또한 중국, 북한 등에서 오가피가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는데도 통관시 철저한 성분검사를 하기는커녕 서류와 관능검사만으로 수입신고필증을 발급해 줬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자 자신들은 발을 빼고 해당 업체에 눈가리기식 처벌을 해 양측 모두에게 비난을 사고 있다.
S씨는 “식품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독을 넣었는데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K사와 정부가 밀월 관계에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K사 측도 발단은 식약청이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식약청의 정식 통관절차를 거쳐 북한의 오가피를 식품 원료로 들여와 사용해왔다”며 “그런데 뒤늦게 식약청이 처분을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향가피에 대한 대응도 민원이 제기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그것도 국정감사에서 두명의 국회의원이 각각 식약청과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질의를 받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게다가 S씨에 따르면 정부의 관계자가 자신이 K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자신를 찾아와 소송을 취하해 줄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농민들의 피해
이같은 업계의 진흙탕 싸움과 정부의 미온적 대응으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오가피 재배 농민들이다.
오가피는 한번 심어놓으면 특별히 손 댈 일이 없기 때문에 땅만 있으면 다른 농사와 병행이 가능하다.
또한 그간 오가피 재배자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 땅에 알맞게 품종이 개량됐다. 거기에 오가피 붐이 일자 많은 농민들이 오가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제 오가피는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오가피 재배에는 맹점이 있다. 오가피는 최소 5년생이 돼야 약효가 생기기 때문에 재배기간이 길고 상품화가 늦다. 따라서 2000년에서 2002년 오가피 붐이 한창 일때 오가피를 키우기 시작한 농민들은 이제 추수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전체적으로 오가피 시장이 축소된 실정이고, 농민들이 애써 키운 오가피는 팔 곳이 마땅치 않게 됐다.
게다가 오가피 농장 관계자는 오가피를 분양하거나 씨앗을 팔면서 질이 좋은 국산 오가피가 아닌 품질이 형편없는 중국산을 속여 판 경우가 많다고 밝히면서 농민들이 5년여를 고생하고도 상품화시키지 못할 오가피가 속출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피 시장의 안정은 업체들이 공정한 경쟁과 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에 힘쓰고, 정부는 조율자로서 명백한 판정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정책을 펼칠 때 이뤄질 것이다.
이승현 기자/tomato@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