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자본주의는 자전거와 같다”라고 했다. 자전거는 밟아야만 앞으로 나아가며 멈추는 순간 넘어진다. 플러스 성장을 해야만 자본주의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비유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는 거시적 수치상으로 보면 차이가 있지만 플러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보면 이미 넘어진 자전거와 같은 모습들이 너무나 많다.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을 보자. 세계 최고의 부국(富國)인 미국에서 10가구중 1가구 이상이 가난 때문에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
또 결식아동이 있는 가정도 26만5천여 가구에 이른다. 미국 농무부가 지난해 10월 31일 발표한 ‘빈곤실태 관련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식료품을 살 돈이 없어 걱정할 정도의 절대 빈곤층이 미국내 전체 가구(1억800만)의 11%인 약 1천200만 가구로 나타났다.
2001년에 비해 5%, 2000년에 비해서는 8% 늘어나는 등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가난으로 인한 결식 가구 수도 2001년에 비해 8.6%, 2000년에 비해서는 무려 13% 증가했다.
끼니 걱정을 하는 가정에서 아이들만큼은 굶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26만5천여 가정에서 식료품이 떨어져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는 사례가 있었다고 보고 되고 있다.
배를 곯거나 먹거리 걱정을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절대빈곤층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빈곤층으로 분류된 인구는 1년전에 비해 1천700만명 이상 증가한 3천460만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전체 인구 2억8천만명 중의 12%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2002년 기준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정부 통계로는 전체 인구의 9.8%인 460만명, 보건사회연구원과 학계의 주장으로는 7백72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6%나 된다. 결식아동수만도 17만명이나 된다.
그런가하면 신용불량자가 370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6%나 된다.
최저생계도 유지하기 어려운 빈곤층이나 신용사회에서의 전과자와 같은 신용불량자는 이미 넘어진 자전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몰락한 계층이다.
문제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강하고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한번 몰락한 계층은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1980년대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권위가 몰락하고 세계 경제 전쟁이 가열되면서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체제 국가들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감소하고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두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시장경제원리의 채택과 복지국가 실현이다.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복지 국가의 이상을 실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다만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형태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경제적 평등에 역점을 둔 ‘복지’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에 역점을 둔 복지‘자본주의’, 그리고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과 불공정한 경제행위, 과소비 문화가 팽배한 천민형 자본주의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는 시장 경제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이용해 노동 계급의 복지 수준을 중산층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북유럽형의 ‘복지’자본주의다.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고 자유와 경제적 능률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미국의 경우 국민 총생산에 대한 사회복지 예산이 20% 수준이다.
반면에 분배정의를 실현하고 계층간의 소득 편차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두고 완전 고용 정책과 거의 완벽한 사회 복지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스웨덴은 사회복지 예산이 국민 총생산 대비 40%에 이른다.
한국의 사회복지 예산은 7.5% 수준에 불과하다.
스웨덴이 ‘복지’자본주의, 미국이 복지‘자본주의’ 국가라면 우리나라는 아직 천민형 자본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장기발전과 함께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밑그림을 그려야할지를 위정자들이 깊이 있게 고민해줄 것을 주문한다.
편집국장 김병조/bjkim@f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