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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의 사찰음식-⑧> 깨끗함과 더러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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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는 것도 큰 일
불구부정,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는 중도

불교의 진리는 한마디로 열반성취에 있다.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 열반을 얻은 것이다. 무상대도(無上大道)는 고통과 번뇌와 윤회와 무명(無明)이 소멸된 적멸(寂滅)의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철학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논리성을 전제로 하는데, 그래서 “불교는 믿음 위주의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실천의 종교다”라고 말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무조건 정해진 대로 믿으라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사색하고 명상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 알아맞혀 봐라’라고 하는 종교에 가깝다. 


그러므로 불교를 자각(自覺)의 종교라고 말한다. 

  
열반의 의미를 확연하게 이해라도 해야 불교의 맥을 잡을 수가 있다. 불교는 매우 과학적인 종교이다. 적당히 믿으면 되는 종교가 아니라, 상당히 논리적인 종교로서 철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종교란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의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 즉 법은 영원무궁하게 항상 구르고 있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불교에서는 대반열반 즉 ‘마하빠리니르바나’라고 하는데, ‘빠리’란 말은 원만(圆满)、완전(完全), 진입(进入)이란 뜻인데, 이것은 열반에 들었다는 말이다. 열반은 의미가 다양하게 번역할 수가 있는데, 식멸(熄灭)、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무위(無為)、해탈(解脫)、자재(自在)、안락(安樂)、불생불멸(不生不滅)의 뜻이 있다. 거의가 무엇을 멸한다는데, 그 무엇인 목적격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삼사라(윤회전생)’이다. 그러면 삼사라인 윤회전생은 왜 생기느냐하면 둑카인 고(苦)로 인하여 무명(無明=無知)이 생겨, 까르마(業障)가 쌓여서 결국은 ‘윤회전생’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대각을 성취하고 45년간 설법했는데, 그것은 오직 중생들이 삼사라를 끝내려면 열반을 성취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하려면 고집멸도 사제(四諦)를 이해하고 일체개고 제법무아 제행무상이라는 삼법인을 인식해서 팔정도(八正道)를 닦아서 오온(五蘊, 판차스칸다)이 공한 것을 알고 벗어나서 해탈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바로 열반(해탈자재)에 들어간다고 했다.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좀 어렵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업장(까르마)을 소멸해서 해탈(자유)하여 열반(적멸=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씀이다.

 
이제 사찰음식과 관련한 음식을 먹고 똥을 싸는 철학적 분석을 해본다면, 불이사상(不二思想)을 이해해야한다. 불이란 둘이 아니라는 말인데, 결국 같다는 논리다. 불교에서는 모든 상대적 개념을 흑백논리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초월하여 원융하는 총합의 논리를 제시한다. 헤겔의 정반합(正反合)과도 같은 이치다. 

  
정반합의 기본적인 구도는 정(테제)이 그것과 상반되는 반(안티테제)과의 갈등을 통해 정과 반이 모두 배제되고 합(진테제)으로 초월한다는 것이다. '정'은 어떤 것이 기존부터 유지되어 오던 상태를 말한다. 이 '정'을 부정하며 새로운 상태를 제시하는 것을 '반'이라 한다. 하지만 '반'은 모순을 극복하였다고는 하나, 이 세상 모든 물체들은 모순적 면모를 지닐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상태인 '합'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합 또한 모순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합'은 다시 '정'이 된다. 이러한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 정반합 이론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정과 반의 갈등에 초점을 두어 변증법적 유물론과 유물사관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불교에서는 공가중(空假中) 삼제(三諦)를 말한다. 삼제는 진제(眞諦)로서의 공(空), 속제(俗諦)인 가(假),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진리인 중(中)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삼제설이 주창된 까닭은 제법의 실상이 중도(中道)에 있음을 밝히는 데 있으며, 공·가·중이 서로 원융(圓融)한 것임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먹고 싸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더럽고 깨끗하다는 것 또한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큰 절에 가면 사찰음식을 만드는 곳을 ‘정재소(淨齋所)’라 했고, 싸는 곳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여기서도 불이사상, 공가중 삼제에 의한 중도사상(中道思想)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열반이란 해탈자유의 경지에서 중도를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이란 인식논리 방법이 있는데, 이런 인식논리를 개발한 분이 6세기 경 고구려 츨신의 승랑(僧朗) 스님이다. 인도 중국에서 유행하던 모든 불교진리와 논리를 터득하고 인식논리의 한 방법으로서 제창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이제(二諦)를 종합하여 중도를 밝힌다"이다. 중도를 밝히는 방법으로 세제(世諦)와 진제(眞諦)의 이제(二諦)를 합명(合明)하는 방법, 즉 정반합지양(正反合止揚)시키는 방법을 쓴 것을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이라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출가 전의 쾌락(樂行)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하며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성도(成道) 후 그때까지 함께 고행을 하고 있던 5인의 비구(比丘)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한 것이 중도의 이치였다.

 
결국 불교공부는 중도인데, 사찰음식에도 이런 중도의 철학이 있고, 먹고 싸는 일에도 이런 철학적 의미가 깊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사찰음식을 먹을 때는 명상하면서 보약이나 영약을 먹는 다는 자세로 음식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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