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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위탁급식 몰락 몰고간 '노예계약서'"

학교, 시설투자비부터 식재료 업체 선정까지 일방통행

 

임채홍 전 한국급식관리협회장 이제는 말한다


"그 당시 학교급식 계약서는 너무도 일방적인 갑의 입장만 주장하는 노예계약서로 많은 업체들이 망해나갔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갑·을 관계를 말하는 요즘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급식관리협회장을 맡아 국내 급식시장을 이끌어 온 임채홍 초대 한국급식관리협회장은  2시간여 동안 푸드투데이와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 급식산업의 태동과 직영화 당시의 상황,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학교급식의 역사는 지난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1953년 유니세프의 구호급식에서부터 비롯돼 지난 1981년 1월 21일 학교급식법 제정으로 영양사가 일선 학교 현장에 배치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게 됐다.


당시 학교급식은 우유배식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 초등학교로 급속히 확대됐다. 여기에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지킨다는 명목이 있었다. 이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또다시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2000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의무적으로 학교급식을 시행하도록 했다.


당시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 학교들은 예산과 시설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우왕좌왕 이였다.


임채홍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1998년 IMF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학교급식을 위탁시키는 목적으로 학교급식 시설을 100% 투자시켰고 업체들은 학교 1개당 최소 1~3억원 정도의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다"며 "한 업체에서 학교를 10~20개 운영하다보면 수십억원을 투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것이 민간 위탁의 출발점이 됐다"고 당시를 전했다.


임 회장은 하나의 체제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0년 새해 1월 잠실 롯데호텔에서 '한국급식관리협회'를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임 회장은 "그러나 중소기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처음 태동이 대기업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자존심에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늘 갈등하고 패가 갈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협회회원구성은 500여개가 넘는 학교급식업체 가운데 겨우 80여개 업체에 달하며 이들 업체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영세 급식업체로 돼 있었다.


재정지원과 학교급식장의 시설 확중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추진된 학교급식 확대는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 회장은 당시 학교측은 기업체의 경제성은 생각하지 않고 많이 투자하는 업체를 선호하다보니 대기업을 참여시켰고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측은 일방적으로 무료급식과 급식시설투자비 지정은 물론 식재료 업체 선정까지 갑의 위치에서 업체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을의 위치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당시 학교급식 계약서는 노예계약서나 다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2~3년 계약기간 안에 투자금액을 회수하려면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었음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임을 모두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당시 학교급식의 식중독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교육인적자원부 등 정부당국이나 급식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일부의원들이 학교급식형태에 대해 회의를 갖고 학교급식개선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하면, 의원입법으로 급식개선에 대한 제도적 보완조치를 통해 현재의 위탁급식공급을 직영급식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됐다.


전문가들은 위탁 위주의 급식제도를 직영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회장은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느닷없이 배옥병 대표를 주축으로 학교급식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가 나타나 사사건건 학교급식을 문제 삼았고 이에 전교조를 앞세워 학교급식은 무조건 직영급식으로 해야하며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적략적 명분으로 급식업체를 전멸시켜야 된다는 막가파 형식으로 몰고 갔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여기에 2006년 6월 CJ푸드시스템(현 CJ프레시웨이)의 대규모 학교 급식 사고가 직영급식으로 전환하는 불씨가 됐다.


그는 당시 학교급식의 직영이 좋으냐 위탁이 좋으냐를 따지는 것은 형식적이었고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들을 등에 업고 학교급식을 직영급식으로 전환토록 하는 학교급식법이 국회에 통과되며 급식업체들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고 당시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임 회장은 "CJ푸드시스템은 학교급식 운영권을 모두 포기하는 조건으로 식중독 파동은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중소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며 "학교급식을 포기해야만 하는 중소업체들의 임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고 사업주는 막대한 투자를 해온 학교급식 시설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기부체납으로 학교측에 넘겨줘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당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충격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결국엔 죽음까지 맞이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졌었다"고 덧붙였다.


직영급식으로 전환 된지 3년이 지난 지금 식자재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식중독사고, 원산지 허위표시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연도별 식중독 발생현황'을 분석해 보면 2009년부터 2013년 5월까지 최근 5년간 학교 직영급식소에서 발생한 식중독 환자의 비율이 2011년에 1648명으로 식중독 환자 전체대비 23.1%에서 2012년에는 2851명으로 전체대비 47.1%로 증가했으며 금년에는 학교위탁급식소에서는 1명의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반면 직영에선 763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무리한 위탁급식의 직영 전환은 당시에도 많은 사회적인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당시 위탁급식 종사자 18만명의 실직문제와 함께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예상치 못한 급식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반증하듯 지난해에는 11월 전국 초.중.고교 급식 비정규직 직원 15만여 명 중 10% 정도가 파업을 벌여 900여 개 학교의 급식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학교급식이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전환 된지 3년 만에 발생한 급식대란이다.


일부에서는 교육재정 여건을 무시한 채 진행된 위탁급식의 직영 전환과 무상급식의 외침이 이런 사태를 낳게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임 회장은 "학교급식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이 좋은가 협의를 통해 자율적 운영이 합리적 운영 방식이다"며 "국회에서 법을 정하는 것 보다 지방자치제의 의회에서 혹은 교육감 의지에 따라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학교급식은 공익성, 경제성, 사회적 책임 등을 따져야 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또 "자율급식이 시행이 된다면 일방적인 노예계약서에서 벗어나 사업 현실성에 맞는 표준계약서에 준한다면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하며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의 급식업종 중기소업 적합업종 선정에 대해서는 "이제 대기업들도 경제민주화의 실천에 앞장서서 중소기업과 생생하는 길로 가야 된다"며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한다면 산업체 등 단체급식시장은 년간 매출 300억원이상과 한끼식사 1개 구내식당 약 700~800식 이하는 중소업체와 개인업체 시장에 활성화를 위해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LG 아워홈, 삼성에버랜드, 현대그린푸드 등 6~7개의 대기업과 동원푸드, 풀무원의 이씨엠디외 3~4곳의 중견기업은 이제 작은 업체들을 위해 배려하고 과감한 양보를 통해 급식업계의 상생과 함께 급식업계도 하나의 산업으로써 자리를 잡아 나갈 기회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마지막으로 "지금 말씀드린 것으로 모두를 표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초대 한국급식관리협회장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약 7년간에 걸쳐 우리나라의 급식의 초석을 다지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그간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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