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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속이는 가격의 숨은 비밀

9990원이나 0.99달러, 1.99달러 등 반올림된 숫자보다 아주 조금 낮은 숫자로 매겨진 '단수 가격'은 가격 심리학을 이용한 마케팅 가운데에서도 가장 잘 알려지고,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단수 가격의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여럿 있는데, 가령 한 제품을 39달러로 책정했을 때에는 40달러로 책정했을 때보다는 물론, 34달러로 책정했을 때보다도 더 많이 팔렸다는 식이다.

  
1만9900원이 2만원보다 단지 100원 싸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을 접할 때 끝자리를 대충 잘라내고 첫 자리 숫자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 윌리엄 파운드스톤이 가격의 다양한 속임수를 흥미롭게 파헤친 책이다.

  
숫자에 불과한 가격이 소비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합리적인 결정을 방해하는 경우는 많다.

  
이러한 '숫자 놀음'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원리 중 하나는 '앵커(anchor) 효과'다.

  
가령 '유엔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65%보다 높을까 낮을까' '유엔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라는 두 연속된 질문에 답한다고 하자.

  
한 그룹에서 두 번째 답의 평균값은 45%였다. 반면 또다른 그룹에서 첫 질문 속 65%라는 수치를 10%로 바꾸어 질문했을 때 두 번째 답의 평균값은 25%였다. 65와 10 모두 무작위로 고른 의미 없는 숫자였지만 이어지는 질문의 답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다른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을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경구피임약 복용으로 난소암이 발생한 여성들이 미국 보건기구를 상대로 제기한 가상의 소송에 대한 배심원이 되도록 했다.

  
각 그룹에는 원고 측 청구 금액을 100달러, 2만 달러, 500만 달러, 10억 달러로 알려주었다.

  
그 결과 똑같은 사건이었지만 학생들의 평결 금액은 큰 차이가 났다. 100달러를 청구한 경우 990달러, 2만 달러에는 3만6000 달러, 500만 달러에는 44만 달러, 10억 달러 소송에는 49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한 것이다.

  
10억 달러라는 터무니 없는 금액을 요구했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 배상액을 책정한 것은 아니지만 청구액이 많을 때 배상액도 높아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러한 앵커 효과의 함정은 전문가들도 피해가지 못해서 한 실험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똑같은 집에 대해 네 개의 서로 다른 매물가격을 알려주고 감정을 의뢰했을 때 매물가가 높을수록 감정가도 커졌다.

  
이밖에도 이 책은 식당 메뉴과 슈퍼볼 티켓 가격에 숨은 비밀, 할인 쿠폰과 포인트 적립의 속임수 등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가격의 미묘한 심리학을 알기 쉽게 전한다.


동녘사이언스 펴냄 /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 최정규.하승아 옮김 / 451쪽 /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