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노태영기자] 세계김치연구소(소장 장해춘)는 발효식품의 발효 과정에서 문제로만 여겨졌던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가 김치와 같은 복잡한 연속발효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발효 미생물의 생존을 돕는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새롭게 구명했다고 16일 밝혔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로, 그동안 발효식품 산업에서는 발효 종균의 생장을 방해하여, 발효 실패나 지연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인식됐지만 이번 연구는 박테리오파지가 단순히 세균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 발효 환경 내에서 주요한 발효 미생물의 생존을 지원하는 유전자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고 세계김치연구소는 설명했다.
원태웅 박사 연구팀은 김치와 막걸리의 메타유전체 분석과 공출현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박테리오파지가 발효 과정에서 유산균과 같은 특정 발효 미생물을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개체군의 균형을 조절함으로써 다른 유산균이 생태학적 공간을 확보하고 군집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가운데 발효 과정에서 유산균 간 경쟁을 완화하는 일종의 ‘미생물 교통 정리’ 메커니즘으로, 김치와 막걸리 특유의 풍미와 품질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특히 박테리오파지가 극한 발효 환경에서 유산균의 생존력을 직접 강화하는데 발효가 진행될수록 pH 변화와 대사산물 축적 등으로 환경 스트레스가 심화하고, 박테리오파지는 스트레스 극복 유전자를 유산균에 전달하여 이들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DnaB 유사 헬리케이스(DNA 복제 안정화), 니코틴아미드 모노뉴클레오티드 운반체(에너지 대사 최적화), 데옥시뉴클레오사이드 키나제(DNA 합성 및 복구) 등 6종의 핵심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구명했고, 이러한 작용 덕분에 유산균은 발효 말기까지 생존하며 발효를 완수할 수 있게 된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이번 연구가 발효 생태계에서 파지-숙주 상호작용의 과학적 이해를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향후 발효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미생물 제어 전략’ 개발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연구 결과는 식품과학기술 분야 국제 학술지인 `LWT-Food Science and Technology (IF 6.6)'에 게재됐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주도한 원태웅 박사는 “그동안 특히 유제품 산업에서는 종균 감염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때문에 박테리오파지가 발효의 방해 요인으로만 인식됐다”라며, “그러나 김치로 대표되는 ‘비살균 개방형 발효 시스템’에서는 박테리오파지가 복잡한 발효 생태계의 균형과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새롭게 구명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