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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더 - 농심

Do Dream World Best Company - NongShim

한국 식품산업의 역사와 함께 해온 농심이 회사 설립 45년 만에 매출 2조원시대를 여는 원년을 2010년으로 정했다.

농심은 지난 5일 경영공시를 통해 올해 매출 2조 2100억원, 세전 이익률 10%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발표했다. 이는 전년대비 19.4% 성장한 규모다.

특히 농심은 전 세계 70여개 국가에 라면과 스낵 등을 수출하며 2015년 매출을 4조원으로 잡고, 이 가운데 1조원을 해외사업에서 창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농심은 올해 과자 등 스낵 부문에서는 상품력을 강화해 매출 2570억원을, 음료 사업에서는 신규 수요를 개척하고 생수 제품인 삼다수의 판매력 등을 끌어올려 매출 255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타 상품 부분에서도 해외 진출과 브랜드의 세계화, 전략 제품의 육성 등을 통해 2885억원의 매출을 낸다는 계획이다.

농심은 지난해 10.1% 성장한 1조 8456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1051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3.9% 소폭 상승했으며, 당기순이익은 1274억원을 달성해 전년보다 62.4% 증가했다.

현재 대한민국 라면시장에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농심의 이러한 목표와 기대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농심의 지난 역사 45년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새우깡·신라면 등 멀티히트 상품 수두룩
탄탄한 재무건전성 바탕 ‘알짜기업’ 평판



올 매출 2조 돌파 19%성장 전망

농심의 시작은 설립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롯데공업을 설립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방동의 라면공장이 2조원 매출을 여는 본거지가 된 셈으로 현재는 안성과 아산, 구미 등 전국에 6개 공장으로 그 규모가 확대됐고, 해외의 중국 상하이와 칭다오, 미국 LA 에서도 농심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후 농심은 1971년 한국 최초의 스낵인 새우깡을 개발해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1986년 신라면의 등장으로 한국의 라면시장 점유율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또한 2000년 1월에는 한국 식품업계 최초로 IQ-NET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신화 뒤에는 끊임없이 연구와 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기업 풍토가 정착된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농심은 700억원을 투자해 건립한 대방동 본사 사옥 옆에 지하 3층, 지상 20층 규모의 농심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센터를 건립했다.

다른 기업들이 R&D센터를 지방에 두는 것과는 달리 농심은 거꾸로 경기도 군포시에 있던 센터를 본사 옆으로 옮긴 것이다.

농심은 회사 설립 당시부터 식품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당시 연구원은 고작 2명이었지만 정식으로 ‘연구소’라는 명칭을 내걸었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적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창업주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금은 국내 식품업계 가운데 최대 규모인 130여명의 석박사급 전문 연구인력이 신제품 연구와 개발, 그룹의 새로운 사업모델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농심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농심맨’의 자격은 ‘농사짓는 마음’이란 뜻의 사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심은 기본에 충실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회사 면접 기본 자료로 고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한다. 기본과 소탈한 농심의 기업문화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렇게 회사를 믿고 함께 커나갈 인재를 선호하다 보니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 대부분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현재는 이사급 이상으로 승진해 있는 상태다.

소비자를 중시하고 소비자가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분에도 ‘농심맨’들의 자부심과 뚝심이 묻어나 있다.

농심은 소비자들이 100∼200원 때문에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입맛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란 믿음과 신뢰가 국내 라면시장 70% 이상을 점유하는 1등 제품 수성을 가능케 했다.

눈과 귀에 익숙한 농심제품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어릴 때 즐겨 찾던 제품을 자신의 아들과 딸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라면시장 15년 지존 신화 이어가

농심의 장수제품을 살펴보면 1971년 12월 처음 나온 새우깡이 히트한 후 지금까지 그 명성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감자깡과 고구마깡, 양파깡 등 일명 ‘깡 시리즈’의 대명사가 됐다.

라면의 경우는 농심이 1982년 경기도 안성에 스프 공장을 완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안성탕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로 인지도가 높은 ‘안성’이라는 지명과 국물 맛의 느낌을 살린 ‘탕’이라는 단어를 합친 안성탕면은 1983년 9월 선보였다.

1984년 3월에 내놓은 자장라면 짜파게티는 단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며, 안성공장 준공 후 해피 소고기라면과 너구리 등의 히트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회사 창립 20여 년 만인 1985년 드디어 한국 라면업계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또 무모할 정도로 꾸준하게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던 농심의 뚝심이 빛을 보게 된 라면계의 전설, 신라면을 1986년 내놔 1등 기업의 범접할 수 없는 대세를 굳혔다.

재정면에서도 농심은 타 사의 부러움을 살만하다는 평가다. 현금성 자산도 3000억원이 넘어 식품업계에서 가장 ‘알짜’라는 평가와 함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시절에도 농심은 1명의 감원도 없었다.

게다가 월급 외에 성과급 300%까지 지급해 당시 농심 직원들은 외부에 나가면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농심이 국내 라면업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제품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는 점.
압도적인 시장 1위가 됐지만 ‘신라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만약 판매가 부진할 경우 농심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심 전체 매출의 약 30%를 육박하는 신라면의 인기를 감안한다면,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해외 생산 거점 9개로 확대 추진

농심은 글로벌 전략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농심은 동북아(중국), 미주(미국), 동남아(베트남), EU(러시아) 등 글로벌 4개 권역별 생산 판매체계를 구축하고, 해외 생산거점을 4개에서 9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농심의 2009년 해외 수출실적은 2008년 대비 25.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해외사업 매출목표 3억 달러를 초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에 따라 올해 2010년 해외사업 매출목표를 지난해 대비 20% 늘어난 3억 6000만 달러로 설정했다.

특히 농심 해외사업의 주요거점은 시장규모 4조 5000억원으로 세계 라면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 집중 투자할 준비를 마련해 놓고 있다.

농심은 1996년 9월 중국 상해에 첨단 설비를 갖춘 현지 라면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2008년 9월에는 기존 상해공장을 전략적으로 확대 이전, 16종의 제품을 연간 4억개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금산공장’을 준공했다.

농심의 2009년도 중국사업 매출은 전년대비 20% 성장한 7000만 달러를 달성했고, 올해 중국사업 매출목표는 2009년 대비 35.7% 상승한 9500만불이다.

마오쩌둥의 ‘만리장성에 와보지 않은 자는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 ‘매운 맛을 먹지 못하면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광고 문안도 빛을 보고 있다.

특히 농심의 주력제품인 신라면은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의 맛을 대표하는 식품,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고급브랜드로 인식하며 ‘귀족라면’으로 통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웃과 더불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함께 행복하기를 추구하는 ‘농심철학’ 45년.

농심의 매출 2조원대 진입과 성공신화 뒤에는 ‘농심맨’만의 자부심과 45년간 이어져온 고객과의 끈끈한 신뢰, 연구 개발에 매진하는 기업풍토 등 긴 역사에서 축적된 무형의 복합적인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