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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제약회사 배만 불렸다”

천연물 신약 허가절차, 식약청 국감 도마 올라

18일 오전 8시 충북 청원군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 전국 각지에서 온 한의사 1,500여명이 모였다. 정부의 천연물신약 정책을 반대하는 궐기대회였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를 받는 식약청 앞에서 대한한의사협회 소속 한의사들은 “식약청의 고시 변경으로 한약을 캡슐에만 담아도 천연물신약(양약)이 돼 제약업계의 배만 불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궐기대회는 2008년 식약청이 ‘의약품 등의 품목허가 신고 심사규정’고시를 변경해 기성 한약 처방에 쓰이는 천연 추출물을 신약으로 규정한 것을 뒤늦게 반대하는 시위였다. 당시만 해도 고시 변경이 미칠 파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한의사들이 지난해 한 제약회사가 한의원이 처방해 온 청파전을 그대로 원용한 관절염 신약 신바로캡슐을 출시하자 충격에 휩싸였고, 내년까지 60~70여종의 천연물신약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의료법 23조에 따르면 한의사는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은 양약을 손을 못 대면서 한약만 제약업계와 양의사들에게 빼앗겼다는 게 한의사들의 주장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천연물신약의 승인을 취소하고 관련 고시도 폐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의사들은 2000년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에 따라 1,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천연물신약개발이 별다른 성과가 없자 식약청이 신약 허가 요건을 완화해 ‘무늬만 신약’이 쏟아지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한약만 대량공급이 안 되고 있는데 국민 편익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천연물 신약으로 개발돼 국내에 생산되고 있는 품목은 조인스정, 스티렌정, 아피톡신, 시네츄라 시럽, 모티리돈정, 신바로캡슐, 레일라정 등 7개 품목이다. 신바로 캡슐의 경우 자생한방병원에서 처방하던 ‘청파전’을, 레일라정은 배원식 한의사의 활맥모과주를 계량한 제품이다.

 

천연물 신약 개발 연구사업은 2000년 ‘한의약 육성 발전 5개년 종합계획’에 따라 시작됐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천연물 신약 사업이 외려 한의학 발전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 한의사들의 주장이다.

 

안재규 비대위원장은 “식약청의 왜곡된 고시변경이 엉터리 천연물신약을 양산하게 만들었다”며 “한의약을 발전시켜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려는 국가 정책이 식약청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의사들은 2008년 식약청이 고시를 통해 ‘자료제출 의약품 생약제제’를 ‘천연물신약’ 범주에 속하도록 바꿔 허가 절차를 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제출 의약품은 기존 의약품의 투여경로나 효능 표기가 변경될 때, 즉 안전성 검사를 할 필요가 없을 때 쉽게 허가해주는 의약품을 말한다.

 

이 같은 지적은 국정감사에서도 이어졌다. 이목희 의원(민주통합당·서울 금천)은 “전문의약품으로 처방을 받아야 하는 천연물 신약이 지금까지 허가된 다른 신약과 다른 기준으로 허가되고 있다”며 “천연물 신약의 정의, 기준 등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조인스정이 호주에서 건강식품으로 판매되는 등 서양에서 천연물 신약이 의약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생약제제인지 전문의약품인지 정의가 모호한 천연물신약에 정부가 올인할 경우 오히려 다른 신약 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