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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맞은 이영순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독립부처 신설 통합 관리.감독 바람직
먹거리 불신 해소위한 민.관 소통 중요



한국 수의학계의 대부로 지난 31년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이영순 교수(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가 정든 교정을 떠난다.

오는 26일 정년퇴임식을 갖는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의대가 세계 일류로 발전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다”며 “정년 후에는 가장 먼저 아내와 함께 여행길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교수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어 다니는 그는 한국 수의학을 태동시킨 인물로, 그의 저서 ‘실험동물의학’은 지금까지 수의학의 필수 전공과목으로 활용되고 있다.

식약청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교수는 식품안전과 식품안전의 일원화 문제에 대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하면 식품사고와 관련된 국민들의 불신의 벽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식품안전관리를 하나의 정부부처에서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HACCP 인증제도를 식약청과 농식품부가 따로따로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영순 교수를 만나, 교정을 떠나는 그의 소회를 들어봤다.


연구시설.성과 등 괄목 성장

▷ 오는 27일 정들었던 교정에서 정년퇴임식을 갖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제가 1973년부터 6년 반 동안 동경대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79년 서울대에 돌아왔는데, 벌써 3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동경대 유학시절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실험실 장비나 연구시설 등 학습 환경이 하늘과 땅차이로, 일본이 크게 앞서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유학을 마치고 다시 서울대를 찾았을 때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서울대에 현미경 한 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가 역전돼, 서울대가 오히려 동경대보다 연구시설 측면이나 연구 성과 등 모든 부문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저는 교정을 떠나지만 서울대학교 수의대가 세계 일류로 발전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자리에서 인정받을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비춰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슴에 담고 있었습니다.

▷ 서울대에 부임하셨을 때는 국내 수의학 분야가 황무지 상태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로 만들고 체계화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물질특허제도에 가입이 안 된 상태로, 1987년 가입 전까지는 특허료도 안내고 남의 나라 약을 공짜로 받아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래서 1985년부터 제가 중심이 되어 식품이나 의약품에 독성과 안전성을 측정하는 제도를 만들어, 현대와 삼성, LG, SK 등 4대 기업에서 신약개발에 투자하고 매진하는 붐이 조성됐습니다.

특히 국내 수의학 연구의 바이블이 된 ‘실험동물의학’ 책을 첫 번째로 편찬해, 지금까지 필수 전공과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교수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책을 만들면서 가능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세계 리더급 레벨 성장 자부

▷ 프론티어의 열정으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셨는데, 그 수가 어느 정도입니까.


-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현직 교수를 포함해 줄잡아 석박사만 90여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되는데,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서울대가 세계 리더급의 레벨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수들의 수준이 그만큼 향상됐다는데 있습니다.

실례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SCI의 논문 게재수 등에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지면을 통해 밝혀주시지요.

- 그 전에 서울대학교는 오는 2011년부터 법인화로 전환됩니다. 일부 반발도 있지만 법인화는 기정사실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됐고, 서울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법인화가 되면 나이든 교수가 젊은 교수를 뽑을 때 연봉이 오히려 젊은 교수가 많을 수도 있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는 시스템이 구축됩니다.

결국 대학사회에서 호사스런 교수들의 취미는 사라지고, 오직 공부에만 미쳐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굳이 후배와 제자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마인드와 연구와 교육이 반복되는 ‘공부하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객관적 언론 보도 태도 중요

▷ 2002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날로 국민들의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교수님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식품안전과 관련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매스컴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식품위해관련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판결은 무죄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언론이 너무 과잉 과열보도에 집착하다보니 빚어진 현상입니다. 언론은 사건이 발생된 것만 보도하지 무죄판결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사화한다면 해설을 붙여야하고 국민들에게 과학적 근거를 올바로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식품위해사범이 검거되면 그 ‘위해식품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현행법상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는 정도의 해설은 달아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부 등 관계기관의 기존 행태도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요.

- 물론입니다. 식품관련 사고의 가장 중요한 팩트는 국민들의 불신입니다. 즉 불신을 해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러한 불신을 해소해 줄 정부나 학술기관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금은 정부가 쉬쉬하고 사실을 숨기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식품과 관련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선진국은 이러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데, 우리도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먼저 공개하고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알린다면 식품사고와 관련된 불신의 벽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해야 합니다.

▷ 식품안전에 대한 정부의 시스템을 하나로 일원화 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현 정부가 작년 12월까지 농림수산식품부로 식품안전 분야를 일원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입니다.

부처이기주의와 공무원들의 밥그릇싸움이 유럽의 ‘FARM TO TABLE 일원화 시스템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식품안전관리를 하나의 정부부처에서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실례로 HACCP 인증제도만 보더라도 식약청과 농식품부가 따로따로 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됩니까.

식품전문가 그룹 육성 시급

▷ 식품안전관리 전문가 육성도 시급해 보입니다.


- 현재 식품안전관리는 농식품부와 식약청, 그리고 일선 지자체로 분산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지자체를 예로 들면 위생과 정도에서 담당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데, 일선 공무원이 식품안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상식과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겠습니까. 물론 일정 부분 애착을 갖고 일하는 공무원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가가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좀 전에 언급한 분산된 행정시스템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행정부처에서 전문가들이 전문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직 이동이 잦은 지자체가 이를 인식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정년 이후 교수님의 첫 번째 계획은 무엇인지 궁급합니다.

- 31년간 오직 학교에만 매달려 있어서인지 제 아내와 조촐한 여행의 길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인생의 동반자로 항상 곁에서 큰 힘이 돼준 아내에게 여행 선물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수의학과 관련한 집필 작업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까 합니다.

▷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식약청장으로 취임하실 때 본지가 창간됐습니다. 3월이면 창간 8주년인데,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 식품환경신문은 저와 인연이 많은 전문언론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제가 취임할 때 창간했고, 정론의 의무를 다하며 한국 식품업계의 큰 주춧돌로 자리매김 한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 위상이 보다 더 공고해졌고, 식품 분야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식품환경신문을 봐야 한다는 여론도 조성돼 있습니다.

특히 알찬 기사로 가득 찬 인터넷 홈페이지와 매일매일 이메일로 제공되는 뉴스레터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청량제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식품환경신문은 지금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말고, 항상 한국식품산업의 미래를 조망하며 이끌어가는 리딩매체의 역할에 충실해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식품환경신문의 창간 8주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