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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

"대학은 포도원인 셈이고,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라고 할 수 있다. 와인 생산자의 존재 이유가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있다면, 감식가의 존재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이 마시는 게 좋을지를 알려주는 데 있다."

영국 워윅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스티브 풀러는 학자와 지식인을 이처럼 와인 생산자와 감식가에 비유해 설명한다.

최근 번역 출간된 '지식인-현대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남기'는 풀러가 이러한 비유를 통해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이며,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풀러는 학자, 법률가 등을 포괄하는 전문가와, 지식인은 다르다고 말한다. "전문가와 검열관이 의견을 가로막고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오직 진실'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지식인은 의견 차이를 해소하고 정설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목소리도 고려하기 위해 '총체적 진실'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풀러는 첫째, 판단 능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무슨 생각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풀러는 이와 함께 어떤 관점에 대해서든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권한다.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강화하기 보다는 그것을 균형 있게 보충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세도 강조한다.

이와 함께 공공 사안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워야 하지만, 일단 자신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 나면 정중하게 인정하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이를 통해 풀러가 강조하는 지식인의 핵심은 '지적 자율성'이다. 전문가와 검열관처럼 오직 진실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런 자율성은 가질 수 없는 덕목이다. 총체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지적 자율성을 갖고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풀러는 지식을 활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배트맨에 비유했다. "자신의 도움을 구하는 박쥐 신호를 찾아 고담 시의 밤하늘을 훑어보는 배트맨처럼, 지식인은 뉴스를 어느 절망적인 세계에서 나온 은밀한 구조 요청으로 읽는다."

풀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대표적 과학철학 논쟁으로 꼽히는 칼 포퍼와 토머스 쿤의 논쟁을 정리한 '쿤/포퍼 논쟁'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이언스북스 펴냄 / 임재서 옮김 / 230쪽 /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