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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의 사찰음식-⑩> 좌선삼매와 차(茶) 문화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 티베트,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차마고도
운남성 보이 차는 후 발효차 잎 잘게 빻은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운반
해남 대흥사 작설차, 순천 선암사 야생 녹차 마시며 화두공안 참선

중국에서 생산된 차는 실크로드 시대부터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경유, 로마까지 도달했다. 영국인들은 어느 날인가 차를 좋아하게 됐다. 영국은 17세기경 처음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는데,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일으킬 정도로 차수입이 초과하자 인도에서 비밀리에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에 밀매해서 무역균형을 맞추려하자 아편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차는 큰 충돌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은 실론과 아삼에서 차를 재배하게 되었다.
 

차의 시조는 육우(陸羽,733~804)라는 사람이다. 중국 당나라의 문인인데,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정리한 《다경》(茶經) 3권 등을 저술하였는데, 중국의 차 문화는 이처럼 역사가 길다. 육우는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으나, 용개사(龍盖寺)라는 절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 들였으며, 후에 주지의 성을 따라서, '육(陸)'으로, 이름은 점을 쳐 점괘에 따라 '우(羽)'로 하였다고 한다.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웅변에 능하였다. 육우가 어렸을 때,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읽으며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육우는 유교를 배우려고 하였다. 이에 지적선사는 육우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 육우는 절에서 도망,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해서 강남(江南)으로 피신, 오흥에 암자를 만들고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였다. 그곳에서 육우는 그곳의 승려인 교연(皎然)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여러 곳의 차 생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육우가 은거하는 동안 조정에서 그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10년 후인 780년에 14년 동안의 차 연구를 정리하여 《다경》 3권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운남성에서 나오는 보이차가 유명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전역에서 차가 나올 정도로 중국차는 다양하다. 영국인이나 인도인들처럼 우유나 설탕을 섞지 않고 담백하게 그냥 마신다.
  

나는 차(茶)를 잘 모른다. 하지만, 차를 마신지는 어언 60여년이 흘렀다. 어려서 두륜산 대흥사에 있을 때 작설차(雀舌茶)를 접했다. 주지 스님을 시봉할 때, 이 작설차를 피곤할 정도로 다렸다. 그때는 차 맛을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을 비롯해서 노스님들은 차를 즐겼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차를 마시면서 뭔가 형이상학적인 경지를 음미한듯해서 어린 나에게는 신비했다.
  

어렴풋이 《동다송(東茶頌)》의 저자 초의선사가 차를 많이 마셨고 주석했다는, 그때는 터만 남은 일지암(만일암)을 가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비구승 측 소속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대흥사 주지를 했던 박 노장이 사하촌(寺下村)에 법당을 세워서 기거했는데, 그 분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분은 초의선사의 다맥을 계승 한분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당시 어린 나에게는 그저 한 분의 노승으로 기억될 뿐이다. 당시 자의반 타의반의 한 정치인이 이곳에 들렸을 때는 주지 스님 심부름으로 내가 직접 작설차 한 봉지를 여관에 묵고 있는 그분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그때 여관 대청마루에서 일행들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중에 그 분이 JP란 사실을 알았다. 지금은 사하촌이 옮겨갔지만, 그때는 대흥사 입구 코밑에 있었다. 마을에서 절로 가려면 내를 건너야 했다. 비라도 많이 오면 다니기가 너무 불편했는데, 이 분의 배려로 다리가 놓여 졌는데, 작설차 한 봉지의 위력은 대단했었다.
  

인도에 가보면 특히 아삼 차에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티베트인들도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고 이들도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마신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터키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해 온 차를 마셨는데, 지금은 흑해에서 나온 홍차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들은 우유를 섞지 않고 기호에 따라서 설탕은 조금씩 넣기도 한다.
  

실크로드 무역에서 비단이 중요한 품목이었지만, 차 또한 중요한 기호음료로서 인기가 있었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비단이나 차나 다 말(馬)에 의해서 운반되어지고, 사막지대에서는 낙타가 주로 화물을 운반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란 실크로드에서 중국의 차가 인도나 아라비아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까지 전해지는 차 무역의 옛 경로이다. 차마고도는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와 티베트 그리고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과정이다.

 


차와 소금의 운반은 말과 노새가 맡았는데, 중국 사천성과 운남성에서는 미얀마를 거쳐 벵골만으로 또는 티베트로 운반되었다. 말이나 노새 한 마리가 사람과 함께 90kg의 차를 운반했기에 차 무역을 통해서 얻은 이익은 너무나 컸다고 하겠다. 차는 처음 운남성 보이지방에서 생산되었다. 차마도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보이차가 운남성과 사천성을 경유, 티베트의 조랑말로 주로 운반되었기에 송나라 때 차마도(차마고도)란 이름이 명성을 떨쳤다. 운남성 보이차는 전차(磚茶)로 만들어서 운반했다. 전차는 홍차, 녹차, 후 발효차의 잎을 잘게 빻은 것을 틀에 넣어 벽돌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전차는 명나라 이전의 중국에서 흔히 생산되었고,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전차가 보통 사용되지는 않지만, 보이차 등의 많은 후 발효차가 벽돌이나 원반 등의 형태로 생산된다. 전차는 주로 물에 넣어 우려 마시며, 때때로 물에 넣지 않은 채 식량으로 섭취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전차를 통화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이 벽돌 차는 중국에서 사천성 아안에서 대규모로 제조되어 티베트에 공급되고 있다. 티베트 불교사원에 가보면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우유를 넣고 끓여서 하루에도 수차례 마신다. 라마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차 없이는 못살 정도로 차는 일상화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몽골에서도 이 차는 필수품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차는 인도티베트 중앙아시아 등지에 전파되어 일상의 주요한 기호음료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일본만 하더라도 녹차를 많이 마신다. 고려시대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불교사원에서 승려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나라도 문화생활의 향상으로 차 문화가 급격히 발달, 차를 마시는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절에 가서 잠시 머리를 식히거나 차를 마시면서 수행체험을 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한동안 인기가 있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 차 마시는 체험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코스다. 녹차 한 잔을 마시는 데에도 절차와 법도가 있다. 그냥 물마시듯 마신면 안 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젊을 때의 도반인 상명선사를 가끔 찾아서 차를 마시곤 한다. 그는 순천 선암사 호남제일선원(칠전) 선원장으로 있다. 그는 동진출가해서 고래희(古來稀 70세)가 넘도록 삭발염의의 모습으로 선문을 지키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선승이다. 
 

차를 마시면서 화두공안을 참구하는 선승들에게 차는 일상의 음료나 다름없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해 주고 졸음을 막아주고 잡념을 일으키지 않게 하며, 소화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빈속에 너무 많이 마시면 속이 쓰리고 위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무엇이던지 지나치면 해로운 과유불급의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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